사계절이 언제 스쳐 지나간 것인지, 다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차가운 날씨가 왔다. 12월,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 얼굴에 활기가 돈다. 이유는 단 하나,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종교의 의미를 떠나서, 빨간 조명과 초록 조명이 반짝이는 모습만 봐도 그저 좋다고 하니, 저 설렘을 수업으로 가져올 수 없을까 고민했다.
국어 수업에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포함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학생들과 함께한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과정의 목적으로 책과 트리를 접목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한 학기 동안 읽은 책을 준비한 초록색 종이컵에 한 명 한 명 표현하고, 그 종이컵 230개를 쌓아서 커다란 트리를 만드는 것이다. 종이컵 위에 장식을 위한 조명과 반짝이를 두른다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학생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록색 종이컵을 구하는 과정이 조금 번거로웠지만, 학생들이 즐거워할 생각에 내 마음마저 이미 크리스마스 축제현장에 와 있는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트리에서 떼온 것 같은 짙은 초록색의 종이컵이 택배로 도착했고, 여덟 반 중 첫 반의 수업에 들고 들어갔다. "선생님, 종이컵 뭐에요?" "저희 맛있는 거 주세요?"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맛있는 것보다 더욱 즐거운 것을 하겠노라 설명을 하고, `책 트리`를 만들 것이라고 안내했다.
혹여나 학생들이 큰 반응이 없거나, 독후 활동의 의미가 흐트러지면 어쩌나 고민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학생들의 적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읽은 책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와 직접 만든 결과물이 크리스마스 트리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학생들은 이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했던 책을 떠올렸고, 책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장면을 종이컵에 표현했다. 책 속의 등장인물을 책의 표지와 똑같이 옮겨 그린 친구도 있었고, 가지고 있는 스티커나 프린트물을 잘라 붙여 종이컵 하나를 가득 채운 학생도 있었다.
서툰 캘리그라피 솜씨로 책의 제목을 멋들어지게 쓰는 학생들도 보였다. 책 한 권을 가지고 이 작은 종이컵에 표현하라니! 책속의 그 많은 구절 중에 가장 소중했던 구절을 고르는 순간이 얼마나 고민됐을까 싶다가도, 깊은 고민을 거쳐 완성된 작은 마음들을 보니 또 기특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반, 두 반의 수업을 마치고 모두 8반의 국어 수업을 마무리했다. 한 명도 포기한 친구 없이 가득 메워진 종이컵이 무려 230개다. 만드는 과정 역시 학생들과 함께해서 의미가 있었다. 갖은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해봤을 때, 가장 튼튼한 트리를 만드는 방법을 수학 계산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커다란 우드락을 바닥으로 지지하고 제일 밑면에 22개를 두르고, 바로 위층에 21개를 올리기 시작했다.
무너지지 않아야 하기에 양면테이프와 접착제로 고정해나가는 동안 웃음꽃이 끊이지 않으며, 묘한 설렘이 주위의 공기를 채우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완성한 책 트리. 무려 21층으로 우뚝 솟은 트리는 어떠한 트리보다 반짝 빛났으며, 책을 사랑한 중학교 1학년 230명의 각기 다른 책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내가 국어 시간에 한 어떠한 독서 수업보다 가장 즐거웠으며, 가장 따뜻한 수업이었다. "너희가 읽은 책 한 권이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듯, 너희가 읽는 책이 모여 멋진 나날을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