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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회> 오떡판씨의 폭설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19/12/29 [15:59]

전화라고는 달랑
이장 집에 한 대 밖에 없는 전라도 무주 산고라당에
미국으로 시집 간 떡판 씨의 일곱째 오 딸그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장님, 저 딸그만인디요. 우리 남편 조지ㆍ브러시가 아퍼서
이번 설에 갈수 없게 됐슈. 다음에 가겄다고 우리 집에 좀 전해줘유.
술 한 잔 얻어먹을 겸 이장이
어슬렁어슬렁 산비탈 아래 오떡판씨 집으로 건너갔다
헛기침 소리에 오떡판씨 부인이 이장을 맞이한다
-미국에서 전화가 왔는디 딸그만이 남편이 조지가 부러져서 이번에 못나온다네요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떡판씨 부인은 안색이 변하더니
-썩을 년, 채 일 년도 안됐는디 그새 조지가 부러져?
난 삼십년을 넘게 써먹었어도 여태 끄떡없는디
그날 밤 오떡판씨 부인은 산고라당 구석구석에 눈을 바가지로 퍼부었고
오떡판씨는 그 많은 눈을 치우느라고 밤새 한 잠도 못 잤다

 


 

 

▲ 정성수 시인    

맹렬히 쏟아지는 눈을 우리는 폭설이라고 부른다. 폭풍, 폭탄, 폭행, 폭도, 폭주족 등 폭자가 들어간 단어는 왠지 으스스하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민이 스멀스멀 돋아난다. 광야를 겨울 내내 떠도는 짐승들이 허기로 길을 내었는지 얼어붙은 발자국마다 눈으로 채워져 있다. 배고픈 설움은 어디로 갔는지 돌아보면 모두 눈으로 덮여 있어 낯선 땅에 서 있어도 낯설지 않다. 그것은 해마다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저물 무렵은 적막하다.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폭설을 맞아야 키가 자라는지? 내밀한 마음을 만질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요원하다. 그렇다고는 하나 저녁 눈 내리는 행간을 발바닥 다 닳는 순간까지 느리게 건너갈 것이다. 진력을 다해도 시공은 가까워지지 않겠지만 등 뒤에서 또 한 세상이 울고 눈은 내려 폭설이 될 것이다. 누군가 폭설로 나를 탁본해 갈 것인지 천지가 어두워질 때까지 아득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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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9 [15:59]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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