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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 시인   기사입력  2020/01/14 [16:26]

가지들이 잘려나간 들판을 두고
이삿짐을 다 싣고도 발을 떼지 못하는 트럭,

 

잘려나간 포도나무 가지를 삼태기에 뉘여 옮기는 아버지
- 죽지 않을 거다 베어졌을 뿐이란다
두툼한 온기로 어린것 어르듯 나뭇가지를 추슬렀다

 

이삿짐 트럭이 포도나무 집을 다 먹어 치운 뒤에도
달은 집터를 어둠으로 잠그고 무거워진 달은 자주 도시의 맨홀에 빠졌다
그 사이 꺾꽂이를 간 포도나무가 일곱 살이 되었다

 

겨울 포도원에서 온 몸을 뒤튼 채 병원으로 실려 오신 아버지,
똑! 똑! 3초마다 한 방울씩 수액을 흘리는 포도 알에게
콧줄을 타고 귓속을 들락거리는 죽음과
머릿속에서 자라던 검버섯이 확대되고

 

- 얘야! 내 안에서 자라던 고목은 이미 죽었구나!
아버지의 머리맡으로 웅크린 포도원이 잠든 아버지를 끌고 걸었다

 

머리카락처럼 하얗게 쉰 내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 포도나무는 그냥 둬요 제발, 가져가지 말아줘요

 

죽음이 망치를 감추며 떠난 아침,
밤새 침대보에 쏟은 졸음을 손등으로 닦는데
작은 아이는 외조부의 맨발에
자기 양말을 벗어서 신긴다

 

꺾꽂이 묘목들을 키워내느라 긴 잠에서 돌아 온 아버지
회복실을 더듬던 손이 언 땅 풀리듯 움찔거린다

 


 

 

▲ 임은주 시인    

오래된 기도는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 한 때를 기록했다. 모두 도시로 떠나기 위해 포도밭을 정리할 때 아버지는 그 뽑아서 내버린 포도나무 가지들을 다시 자신의 밭에 옮기시고 꺾꽂이로 포도원을 이루어 내셨다. 죽음직전의 생명까지도 다른 땅에 꺾꽂이로 몸소 보여주신 우리의 아버지 복원작업이 내 속에 흐르도록, 생영을 가꾸고 열매 맺는 노동이 내 나무뿌리에도 흐르기를 염원하여 그림 그리듯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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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4 [16:26]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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