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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의 소
기사입력  2020/02/24 [15:51]   고훈실 시인

가장 오래 죽은 소가 제일 맛있는 소가 된다
자기 생을 조준한 분노로 투우는 날뛴다
어미 소의 자궁을 떠나 무릎 꺽인 순간
평생을 따라 올 투창을 예견하며 첫 울음을
울었다 뿔을 갈고 이마를 다치고 씩씩거리며
싸움의 기술을 익혔다 론다의 절벽으로 계절이 오르내리고
자라는 만큼 겁도 커졌다 순한 눈으로 뒷걸음치면
불구의 신이 채찍을 갈겼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을 때* 소는 빨간 장식을
얹은 채 투우장에 들어선다 제일 유능한 투우사는
빨리 죽이는 자가 아니라 오래 죽이는 자
염통에 꽂힌 여러 개의 창이 소를 끌고 다닌다
소가 뿜는 고통이 투우장을 달구고
비틀거리다 벌떡 일어나는 죽음의 이음새
엔진 꺼진 차처럼 소가 쓰러진다
뒷문으로 도망 간 겁쟁이 소보다
훨씬 비싼 값에 싸움소는 팔려 나간다
오랜 고통이 그의 육질을 부드럽게 했다
오랜 분노가 다짐육처럼 그를 칼질했다

 

*김이율 책 제목에서 따옴

 


 

 

▲ 고훈실 시인   

작년에 스페인 여행을 갔다. 절벽 위에 세운 도시 론다에서 그 위태로움보다 더한 것을 만났다. 투우의 발상지가 바로 론다였던 것. 지금은 투우를 금지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이곳 론다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란다. 둥근 투우장에 들어서니 투창에 찔린 소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소의 절규 비명 고통.. 피비린내가 나를 옭아맸다. 그 고통의 댓가가 고작 몇 푼 더 받는 육고기라니. 타인의 또는 타자의 고통은 이렇게 일회용으로 소비되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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