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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그리는 편지 - 김만중의 유배일기
 
이호근 시인   기사입력  2020/03/18 [16:14]

파도가 목구멍 문턱 넘어
솔잎 피죽 가슴 후벼 되돌아갑니다
그게 하루 이틀인가
되돌아가는 파도의 손바닥에
팔십 노모의 안부 몇 자 쥐어 보냅니다
수없이 썼다 썰물로 풀어지는
수평선 너머 흐린 글씨가 언젠가
푸른 이파리 내밀어 지족해협*을 건널 것입니다

 

오늘은 우물도 파고 물 한 종지와
소금 절인 솔잎 한 움큼 씹다
저물녘 햇덩이를 물고 있었습니다
사방 파도소리와 바람에 맞서 보면
두 눈에 박힌 작은 모래알에서
꽃망울 먼저 드미는 세상사 주렁주렁 듣습니다
귀 열어 바람의 속옷을 입어봅니다
부러질 듯 휘청이다 제자리 돌아서는
대숲의 곧은 말씀의 뿌리에 온몸 기울여 싹을 틔워봅니다

 

한번 따스했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아랫목 보다
불 피지 않아도, 한 겨울 파도가 실컷 누웠다 가도
그대로 푸른 살 돋는 솔잎 댓잎 같은 날이 좋습니다

 

허나, 정쟁(政爭)의 팽팽한 매듭 같은 들판에 서면
허기진 야생의 풀씨처럼
굳은 땅 속눈 꼿꼿이 뜨는 것을 어찌합니까
내 곧은 말 마디마디는 오늘 밤 푸른 눈 비벼
결코 눕지 않을 것입니다
수천 년 푸른 물빛지어 흐를 것입니다
기억해주십시오
파도에 씻긴 세모 네모 마름모 각진 돌들이 서로
이야기 둥글둥글 굴려 노도* 바닷가 걸어갑니다
주름지는 기억의 수평선 위로
꼭, 그 날이 괭이갈매기처럼 날아오를 것입니다 어머니!
창 밖 파도 꿰매는 삯바느질 소리가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밤입니다.

 

* 노도 : 서포 김만중의 남해 유배지 섬, 지족해협 : 남해 앞 바다

 


 

 

▲ 이호근 시인    

시 “파도에 그리는 편지”는 시공을 초월하여 김만중이 된 양 유배 당시의 상황과 아프고 쓸쓸한 그의 내면세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 때의 시대적 상황이 현재에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사회성이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 편지가 꼭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이 1연에 담겨 있다면, 2연과 3연은 유대생활의 고독과 궁핍이, 그리고 4연과 5연은 끓어오르는 비분강개와 결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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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18 [16:1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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