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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홉스의 주권론(3)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기사입력  2020/03/24 [16:09]
▲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홉스의 인간관이 마키아벨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주의적 인간관을 가감 없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모의 죽음은 잊고 살아도 내 돈을 떼먹고 도망간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하는 존재라거나, 외롭고 궁핍하고 더럽고 냄새나고 게다가 짧기까지 한 게 인간의 삶이라는, 두 사람의 진술은 너무 많이 인용되다보니 이제는 출처 없이 누구나 언급하는 격언이 되었을 정도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마키아벨리는 위와 같은 인간관에 기초를 두고 `바로 그렇기에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강력한 통치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던 데 반해, 홉스는 같은 인간관을 가지고 `그래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논리를 발전시켰다. 홉스의 평등론이 좀 특별하긴 하다. 그것은 유약한 피통치자도 밤에 몰래 무기를 들고 가서 잠자는 통치자를 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포의 균형`으로서의 평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등의 문제를 누가 죽고 누가 죽일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문제로 이해하면서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을 추적하는 것, 홉스의 평등론이 가진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우리가 잘 아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이다.

 

요컨대,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달리 말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법적 요청이자 권리라면,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모두가 따라야 할 공적 권력을 만드는 신의계약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유사한 인간관을 가지고 마키아벨리는 `무장하라`, `지배하라`는 교리를 설파한 반면, 홉스의 경우는 `합의하라`, `사회계약을 체결해 평화와 안전을 획득하라`는 주장을 발전시켰다는 점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과도 다른 길을 여는 주장이었는데 이 지점에 바로 홉스의 정치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주제인 주권(sovereignty)의 이론이 위치해 있다.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홉스의 비판을 불러오자. 앞서 살펴본 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란 자연적이고 윤리적인 질서를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것이 곧 정의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런 질서에 반하는 통치자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홉스가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정치학의 처방은 `폭군방벌(暴君放伐)`이다. 좋은 국가, 좋은 통치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윤리적 전제이고,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폭군을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홉스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한다. 개개인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통치자를 세웠다고 하자.

 

그래서 그가 통치권, 즉 주권을 갖게 되었다고 하자. 임기 중에 그를 쫓아낼 수 있을까? 아니 쫓아내도 좋을까? 홉스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이를 정당하다고 본다. 통치자가 아무리 합법적으로 옹립되었다 해도 그가 좋은 정치를 이끌지 못하면 강제로라도 쫓아내는 것을 옹호하는 정치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홉스는 그런 선택이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통치자에게 위임한 주권을 중도 해지하는 것, 이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주권의 취지와 충돌한다. 사회적 합의를 파기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에 극단적 대립을 낳을 수 있고 적대적 사회 갈등과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평화와 안전이 다시 위협받는 사회계약 이전의 상황으로 퇴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권을 세운 이유나 목적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홉스의 가상적 논쟁을 좀 더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해보자. 목적 있는 삶,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을 위해 좋은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통치자가 나쁜 정치를 주도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변화를 원하는 시민도 늘어나게 된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정치의 조건에서라면 다음 선거에서 통치자를 교체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 모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임기를 마치기 이전에 선거가 아닌 법을 통해 통치자에게 위임한 주권을 중도 해지하려 할 때 발생한다. 몇 년 전 우리가 경험한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홉스였다면 그 때에도 탄핵에 반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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