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17일 닷새간의 '선암사 칩거'를 풀고 당무에 복귀하기로 하면서 지난 11일 전대 이후 불거진 당내 갈등이 일단 외견상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전날 밤 당무복귀를 전격 선언한 이 최고위원은 이날 새벽 전남 순천 선암사를 떠나 정오 무렵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귀경직후 지역구(은평을)인 은평구청을 방문, 수해상황을 보고받고 주변의 수해현장을 돌아봤다.

18일에는 최고위원회의에 처음으로 참석, 다른 최고위원들과 당무를 정상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다.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최고위원의 당무복귀는 당과 나라 전체를 위해 잘 된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 "서열 2위의 최고위원으로서 국민과 당원의 기대에 부응해 큰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과 초선의원 모임인 초지일관 등 당내 각 모임도 이 최고위원의 당무복귀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 시사로 한때 당내 갈등과 반목이 치유불능의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외견상 당이 전대개최 1주일 만에 정상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의 당무복귀를 갈등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대과정에서 제기된 '색깔론'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강재섭 대표와 이 최고위원간 감정의 앙금이 말끔히 씻어지지 않은 탓이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다른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재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당원.대의원 구조 개선 문제를 놓고 양측이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당원.대의원이 대선 후보 선출 경선때 전체 투표권의 50%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향은 당 대선후보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만큼 각 대선주자 진영에서는 당원.대의원 구조를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전 시장과 가까운 이 최고위원은 현행 당원협의회 및 대의원 구조가 '친박'(親朴.친박근혜) 일색이어서 공정 경선을 위해서는 전면개편이 필요하다는 한다는 입장이다.

당장 이 최고위원이 상경 일성으로 "내년 당내 대권주자 공정경선을 위해선 특정 인맥이 장악하고 있는 중앙당과 시.도당 당직자들을 중립적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선전포고형'에 가깝게 받아들여진다.

반면 박 전 대표와 가까운 강 대표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고리로 박근혜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간의 '파워게임'이 본격화되면서 당내 갈등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최고위원의 당무복귀를 '불안한 동거' 내지는 심하게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보는 시각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최고위원의 독자행보 역시 또 하나의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달 말 당내 비주류 모임인 발전연 소속 의원들과 함께 영국.아일랜드의 IT(정보기술)산업 현장을 시찰한 뒤 내달 초 곧바로 '자전거 민생탐방'에 들어간다.

정기국회 전까지 약 한달 일정으로 진행될 민생탐방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전거를 타고 전국의 민생현장을 누비는 것으로, 이 최고위원은 이를 통해 서민정당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우파대연합' 기틀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강 대표도 외연확대를 위한 우파대연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절차와 방법론 등에 있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어 향후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