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꽃들의 발목
 
최선 시인   기사입력  2020/05/27 [16:29]

유치권 행사 중인 비닐하우스
봄을 잉태한 수십 개의 꽃나무가 묶여 있다
서쪽 해가 기우는 창가
꽃 핀 천리향 하나가 창밖을 내다본다

 

화원 뜰에는 냉이 꽃다지 민들레가 자자하게 피고
대낮이 무색한 칙칙한 비닐 안쪽
꽃들이 잘 마른 오후를 견디고 있다

 

빚에 몰린 주인은 어디에서
풀죽은 봄날 보내고 있는지
천리향의 망연한 눈빛
한 곳에 갇힌 제 또래 꽃들에게
뜨겁게 익은 향기를 입에 흘려 넣는다

 

발끝 세워 기억을 더듬는 한때의 봄날
낯익은 발자국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환청만 쌓여가는 막막한 오후
꽃그림자만 창문 쪽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바람 한 점 스미지 못하는 저 공간

 

꽃들이 부은 발등을 내려다보는 시간
꽃의 감정을 베낀 바람
몇 번이나 문고리 당기다 뒤돌아섰다

 


 

 

▲ 최선 시인   

“밖”을 통해 “안”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향기 짙은 천리향 하나가 창문을 통해 다급함을 알린다. 노출된 “불안한 기류”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상상을 유추해낸다. 유치권(留置權)은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담보로 하여 빌려준 돈을 받을 때까지 그 물건을 맡아 둘 수 있는 권리이다. 주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비닐하우스에 억류중인 꽃들은 숨이 막힌다.

 

절망과 한숨으로 뒤섞인 봄날, 오래 한자리에 서 있어 꽃들의 발등이 붓고 안타까운 바람이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영문을 모르는 꽃들과 사라진 주인, 잠긴 문, 밖에서 기웃거리는 봄, 순환을 멈춘 계절이 “흑과 백”의 대비처럼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타인의 불행에도 민감해져 눈부신 봄날과 누군가의 사건을 병치시켜 “상처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을 확장시켜 문제점을 제시해 본다. 상황을 둘러싼 사건들로 속절없이 꽃들의 시간은 흘러간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0/05/27 [16:29]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