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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옥
기사입력  2020/06/01 [17:51]   김도향 시인

구름 한 점 없는 날
개미 한 마리
바람도 살랑 불고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슬그머니 외출 나왔다가
발 한번 잘못 헛디뎌
인당수에 몸 던진 심청이 신세 되었네
남에게 상처 준 일 없고
동료들과 정 나누며 충실히 살았는데
봄꽃 한번 보는 것만으로 황홀했는데
큰 죄 지은 일 없이 자못 우쭐했는데
지옥문 먼 곳에 있지 않았네
내 발 아래 있었네
캐스타네츠 짝,
입 앙다물면
무간지옥행

 

*파리지옥: 끈끈이귀개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곤충을 잡아먹으며 벌레가 닿으면 소화액을 분비해 분해하거나 소화시키는 식충식물

 


 

 

▲ 김도향 시인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보면 없었던 약속도 하게 하고 말없이 떠나간 옛사랑도 생각나고 살랑살랑 바람도 등 떠 밀고 콧노래 흥얼흥얼 대며 삼보 나섰다가 운명의 장난일까 운수 사나운 일진 탓일까 위장하고 대기해 있던 파리지옥풀에게 개미 한 마리 잡아 먹히고 말았네 앞 뒤 생각 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네.

 

아침밥 잘 먹고 씩씩하게 가던 출근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에 치여 불구가 되고 수학여행 가던 어린 학생들이 여객선의 전복으로 바닷물에 수장 당하고 하늘 날으던 견고한 비행기가 강풍에 추락하고 열 두 발 기차가 탈선하고 잘 걸어가다 한 눈 파는 사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지옥문은 먼 곳에 있지 않았네. 내 발 아래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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