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숨죽인 부추처럼 염장을 하더라도 여전히 파르르 살아있는 파김치처럼 새벽을 질주하는 그대와 난 붉은 야생마 때론 센티멘털한 보헤미안이 돼 보면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고 그대와 나의 긴 호흡도 아득히 삼켜 주리니 감미로운 플루트와 기타 소리에 몸을 실은 하루가 기울고 이유 있는 증오와 분노도 캄캄한 밤이면 존재감 없이 잊혀 질 것을 다시 한 번 고래가 춤을 추면 힘이 솟겠네.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한 끼 밥을 위해 치타처럼 분노의 질주를 하는 사람들은, 내남없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분주한 활동을 하는지 항상 쫓겨 다닌다. 카르마(karma)인 것일까. 푸른 플라타너스도 소나무도 희미하게 칼칼한 미세먼지가 잔뜩 낀 새벽안개 속을 헤치고 막막한 아스팔트를 내달리지만, 간간히 허리를 빳빳하게 세운 억새를 보며 사람들도 허리를 곧추 세운다. 학성공원의 동백꽃이 시들기 전에 다시 한 번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래가 춤을 출 수 있을 것인지 기대를 가져본다. 동해의 소금을 머금은 장생포 고래에겐 우한 코로나도 맥을 못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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