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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등(燈)
 
임일태 전 한국 해양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20/06/29 [16:07]
▲ 임일태 전 한국 해양대 겸임교수    

윤사월 초파일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상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긴 줄이 만들어지고, 부처님의 생일잔치마저 한 달이나 미루어지는 기막힌 해다. 코로나19에 마스크 한 장보다 못한 기도발이라지만 올해도 아내는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불등(佛燈)을 달러갔다.

 

수년을 반복해도 효험이 없어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그나마 자식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본인에게도 위안이 되겠다 싶어 절에 가는 아내가 부러웠다. 도서관도 학원도 열지 않아 갈 곳이 잃은 고시준비생 아들은 제방으로 들어갔다. 어께가 축 늘어진 아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몇 년간의 고시 공부에 패배의식으로 기대도 희망도 없이 습관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는 해 보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희망은 포기한 상태다, 가능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행복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멍 때리는 기계적인 움직임만 있다. 연속되는 스트레스로 무골의 연체동물처럼 허우적거리는 아들의 고통을 대신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내가 해주고 싶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어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을 구석구석 돌다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갓 모종한 토마토 두 포기를 뽑아 화분 둘에 옮겨 심고 긴 지지대를 꼽아 집으로 가지고와서 옥상에 놓았다. 방에만 처박혀 있어 답답해하는 아들에게 숨통이라도 튀어 줄 심산이었다. 지성으로 하늘을 움직여 아들에게 길을 찾아 주겠다는 불등(佛燈)을 달러 간 아내와 달리 아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가 고른 것은 토마토 두 포기였다.

 

오 년 전부터 텃밭에 토마토 농사를 지었다. 첫해에는 심어만 놓고 시간만 지나면 예쁜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다는 줄 알았다. 심지도 않는 잡초는 왜 그렇게나 많이 나는지. 뽑고 나서 돌아서면 또 나는 잡초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잡초는 쑥쑥 자라는데 토마토는 매일 그대로였다. 

 

과연 열매를 달기나 할는지. 영영 꽃도 피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며칠만 물을 주지 않으면 비실비실하여 말라 죽을 것만 같았고, 남의 집 토마토는 통실하게 잘도 크는데 우리 밭 토마토는 왜 이리 비실거리는지 못마땅하기만 했다. 혼자서 서있지도 못하는 주재에 쓸모없는 가지만 자꾸 만들어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지지대를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었다. 전혀 자라지 않은 것 같은데도 며칠만 지나면 끈을 또 매어 주어야하는 것을 보면 자라기는 하는 것 같았다. 풀도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하는 오기로 끈질기게 뽑았더니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주는 적심을 하고나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꽃대가 나오고 노란 예쁜 꽃을 피웠다.

 

꽃이 진 자리에 앙증맞은 열매가 생겼다. 전부가 자랄 것만 같았는데 원인 모르게 떨어지는 것, 병들어 썩는 놈, 겨우 살아남은 몇은 새가 쪼아 흉한 꼴을 하고 있다. 한 나무에 한두 개만이 발갛게 익은 토마토가 되었다. 한 줄로 선 빨간 등불처럼 보였다. 토마토가 영광을 등불을 켜기까지 숱한 시간과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등을 달도록 해야지 하면서 흘러버린 세월이 아들이 시험에 도전한 세월만큼이나 된다. 토마토 키우기나 고시공부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아들에게 토마토 키워보기를 권한다. 매일 하는 지루한 수업에 실력이 정체되어있다고 생각되어도 자신도 모르게 자라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싶다. 

 

도저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 못할 것 같은 토마토 모종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는 것은 말이다.

 

농부도 토마토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만 정작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다는 것은 토마토 자신이 해야 한다.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토마토에게나 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지대가 되어주는 일 밖에 없다. 나머지는 아들이 토마토를 키우면서 자신이 만든 토마토 등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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