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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지나간 자리에서
 
최지온 시인   기사입력  2020/07/09 [18:26]

사과는 성실합니다
포옹하길 좋아합니다 바람의 문신을 새기고
내일에 발목을 담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셀 수 없는 사과가 누더기처럼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자가 영양을 무는 건 순간의 일
총을 든 소년병의 마음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비극은 일상적이죠
친절한 기억들부터 죽어 갑니다

 

꼭 쥐고 있는 손은 단호한데
사과는 떨어지는 것에 익숙합니다
바람과 비를 피하지 않다보니 피로해진 겁니까
의문이 없습니다 사방을 보지 않습니다
세계는 기어코 익어가는 사과의 손을 뿌리칩니다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눈을 비비면 어느새 여럿입니다
더 이상 매달릴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울었습니다

 

흐르지 않고 눈빛으로 가라앉는 울음들,
아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과의 몸에 상처가 깊습니다 깊숙이 오려내고
둘러 앉아 사이좋게 나눠 먹습니다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체 없이 흩어진 건 어쩌죠

 

우리는 죽음의 방향으로 조금씩 자랍니다
두려움을 삼키느라
간신히 매달린 사과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익어갈수록 밤이 더 길어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 최지온 시인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피울음 같은 것이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으로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만납니다. 눈으로 귀로 몸으로. 그럴 때마다 조금씩 우리는 무감해집니다. 그런 반복이 무섭습니다. 세계는 죽음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폭우 같아서. 우리는 자주 죽고 자주 일어섭니다. 우리는 어디쯤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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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09 [18:26]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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