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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대가리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20/07/30 [17:11]
▲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새대가리는 우둔한 사람을 새의 머리에 빗대어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새는 정말 머리가 나쁠까. 텃밭에 밀이 익어가자 참새가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와서 밀을 따먹기 시작하더니 점차 수가 늘어나 떼거지로 몰려와서 밀을 쪼았다.

 

예전에 가을에 벼가 익으면 참새가 몰려와 벼이삭을 쪼는 바람에 참새를 쫓기 위해 큰 장대를 흔들며 종일 목이 터져라 새를 쫓던 일이 생각나기는 해도 오뉴월 밀밭에서 참새를 쫓는 일은 처음이었다. 참새가 떼거리로 몰려와 서있는 밀을 쪼기 위해 날개를 펄럭이며 애를 쓰다 밀이 넘어지면 우르르 달려든다.

 

참새를 쫓아내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면 참새가 먹은 밀 알보다 바닥에 떨어진 밀알이 훨씬 많다. 이러다가 애써 키운 `우리밀` 종자는 참새 때문에 보존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밀어 베어서 그물을 덮던지 비닐하우스 안에 넣어두고 문을 잠그는 수밖에 없겠다.

 

밀을 베고 있는데도 바로 옆에서 밀 이삭을 쪼고 있는 간이 큰 참새. 고함을 쳐도 겁을 내지 않는 요즘 참새, 예전에는 허수아비만 봐도 기겁을 하던 참새가 이젠 사람이 옆에 있어도 꿈쩍도 않았다. 더 먼 곳에 베어서 늘어둔 밀은 쪼아 먹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사람 가까이 서있는 밀을 넘어뜨리려 애쓰는 참새가 멍청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새대가리라는 말이 있는구나 싶었다.


밀을 전부 베고 나서 보니 참새는 보이지 않았다. 베고 나서 곧 그물을 덮거나 비닐하우스에 넣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바닥에 늘어두어도 더 이상 참새가 오지 않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베어 놓고 말리는 일주일 동안 한두 마리의 참새가 와서 쪼다 가기를 되풀이 했다.

 

그러다 또다시 떼로 우르르 몰려올 것이다. 밀을 걷어 멍석위에 놓고 도리깨로 털었다. 알곡이 수북이 보이는 대도 참새는 밀을 먹을 줄 모른다. 이삼 일이 지나자 한두 마리의 참새가 밀을 먹으러 왔다. 그러다 또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와 밀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밀을 다 틀어 부대에 담을 때였다.


궁해진 참새는 수확이 끝난 빈 밀밭에서 떨어진 낱알을 뒤지고 있었다. 다른 작물을 심으려고 흙을 파니 딴 곳으로 떠났다, 그러던 참새가 며칠 뒤에 쭉정이를 날려버린 북데기에서 발가락으로 열심히 뒤져 알곡을 찾고 있었다. 항상 뒷북만 치는 참새는 머리가 나쁜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놀리는 모양이다. 사람의 생각에서 보면 새는 머리가 나쁜 것은 틀림이 없다. 좋은 먹거리를 발견하면 독점을 해야 하는데 경쟁자들을 불러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월하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것만 골라서 한다.

 

텃밭 언덕 새로 지은 이층집 거실, 중년의 여인이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텃밭에서 일을 하는 내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 밀 타작이 끝나는 날 여인은 창문을 열고 "밀농사가 이렇게 과정이 많고 어려운 줄 여기 이사 온 후에 처음 알았다."며 밀 한 되에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다.

 

커피 한잔 값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하자 깜짝 놀란다. 그 표정에서 나를 새대가리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 년 치 수고의 대가는 밀 서너 되, 수입이라고 해봐야 커피 몇 잔 값도 되지 않는 일을 왜 하느냐고 의아해한다. 노후는 멋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좋은 음식을 못 먹고 화려한 옷을 못 입더라도 절약해서 텃밭을 갖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리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은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끔씩 텃밭에 와서 열심히 일하다 지쳐서 돌아가는 나를 보고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새대가리보다 더욱 나쁜 인간새대가리라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새까지도 저희 머리보다 내 머리가 더 나쁘다고 짹짹거리는 것만 같다. 행복은 가슴으로 느끼지 머리로 느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새대가리라도 상관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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