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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배종대 시인   기사입력  2020/08/05 [15:59]
▲ 배종대 시인   

가게 앞을 지나다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에 페인팅 칠 그림을 그려놓고 장식해 둔 것을 보았다. 요즘은 고무신 신는 사람 보기가 드물다. 가끔 스님들과 예술인이 공연을 할 때 외에는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 고무신을 신고 길거리에 다니는 모습은 눈을 닦고 보아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육십년이 조금 지났을 때이다.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모든 식구들이 고무신을 신고 다녔으며 아주 벽촌마을에는 짚신을 만들어 신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집 식구는 모두 검정 고무신이었다.

 

일곱 남매에 부모님을 합쳐 아홉 식구였고  신발도 아홉 켤레였으니 몇이서 집 밖으로 나가게 되면 가각 제 신발을 찾는다고 난리 법석이 되나 자기 발에 맞는다 싶으면 네 것 내 것 없이 신으면 되었다. 필자는 막내였고 형들과 누나들과의 나이 차이도 있었으니 신발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제일 작은 것을 찾으면 되고 또한 형들이 신는다 하더라도 신발이 작아 맞지 않으니 신고 나갈 염려는 없었다. 아버지는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신발 윗부분에 표시를 해 두었다. 형님 것은 동그라미, 둘째형은 삼각, 이런 식이었으나 며칠이 지나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고무신이 찢어졌거나 구멍이라도 나면 아교라는 접착제를 만들어 못 쓰는 고무신 조각을 문질러 덧 붙여 주시곤 하셨다.


옆집 윤철이는 언제나 흰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나는 그 흰 고무신이 신고 싶어 한번 신어 보자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윤철이의 흰 고무신은 아주 고급으로 느껴졌고  검정 고무신은 시골의 가난한 아이들만 신는 줄로 생각되었다. 나도 엄마한테 흰 고무신을 사다 달라고 해야지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밭일을 하고 오는 엄마에게 달려가 "윤철이처럼  흰 고무신을 사 달라"며 떼를 쓰기도 했다.

 

엄마는 "그래, 다음 장날에는 사다 줄께"라고 하며 달랬다. 나는 다음 장날이 되면 흰 고무신을 사다 준다는 엄마의 말에 신이 나서 흙모래 더미에서 맨발로 놀고 있는 윤철이 에게 "우리 엄마도 흰 것 사다 준다 했어"라고 말 했다. 윤철이는 흰 고무신에 흙이 묻을까봐 기차놀이를 하지 않고 있으나 나는 집에 형과 누나의 신발을 몽땅 가져와 흙이 묻어도 더럽게 여겨지지 않는 검정 고무신을 줄줄이 연결시켜 기차놀이를 신이 나게 했다.

 

빨리 장날이 왔으면 하고 기다려졌다. 며칠이 지나 장날이 되어도 엄마는 흰 고무신을 사오지 않았다. 왜 사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깜빡 잊어먹었구나. 다음 장날엔 에 꼭 사 줄게, 그리고 신고 있는 검정 고무신이 다 닳아야 사 오지" 하고는 말끝을 흐리셨다.

 

나는 그때부터 이 검정 고무신을 많이 신어 닳아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문지르곤 하였다. 큰 형이 나에게 말했다. "윤철이는 외갓집이 부산의 큰 도시에서 잘 살기 때문에 흰 고무신을 사서 신는 거야. 그리고 흰 고무신은 검정 고무신보다 몇 배나 비싸서 엄마가 못 사온다" 라 고 말했다.


나도 우리 외갓집이 큰 도시에서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마음이 서운했으나 꾹, 참았다. 형들과 누나들이 학교에 가고나면 집근처 작은 도랑에서 윤철이와 물고기 잡기놀이를 했다.

 

검불 아래에 작은 대나무 소쿠리를 대고 아래로 후리면 피라미, 미꾸라지, 송사리, 물방개 등이 잡혔다, 잡은 것들을 벗어 놓은 고무신에 넣어 놓고 보면  윤철이 흰 고무신에 들어있는 고기는 아주 좋은 집에서 사는 것 같았고 나의 검정고무신에 들어있는 고기는 볼품없는 초라한 초가집에서 사는 고기로 보였으나  녀석들은 불평 한마디 없었다.

 

어느 날 엄마가 시장 에서 흰 고무신 한 켤레를 사왔다, 신을 가지고 바로 옆집 윤철이 에게 갔다. " 나도 흰 고무신 있다 오늘 우리 엄마가 사 왔다 "라며 힘주어 말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무신이 물에 젖어 버렸다. 빨리 말랐으면 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부엌에 석쇠를 내어 놓고 거기에 흰 고무신을 올려놓고 아궁이에 넣었다. 조금 있으면 다 말랐을 것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데리고 가 버렸다. 흰 고무신을 사 오셨던 엄마도, 고무신에 표시를 하고 떨어지면 덧 씌워 때워 주셨던 아버지, 형들과 누나도, 그리고 나보다 먼저 흰 고무신을 신었던 옆집 윤철이도 그 신을 신고 영원한 추억의 뒤안길로 가 버렸다. 석쇠에 올려놓았던 내 흰 고무신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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