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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도 역병 돌면 명절 차례 지내지 않았다
기사입력  2020/09/15 [18:34]   편집부

 조선시대에도 전국적으로 역병이 돌때면 차례나 기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국학진흥원은 15일 소장 일기자료 가운데 `역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를 공개했다.


경북 예천에 살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 2월 15일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며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이틀 뒤 작성한 일기에는 "증손자가 홍역에 걸려 아파하기 시작했다"라는 내용이 실렸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은 `계암일록`(1609년 5월 5일자)에서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했다.


앞서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라는 내용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도 `일록`(1851년 3월 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현종실록`(1668년)에는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홍역과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당시에는 홍역과 천연두가 크게 유행했던 탓에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줬다.


예로부터 집안에 상(喪)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우환이 닥쳤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는 유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상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전염병에 의해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역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모든 집안 행사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보다 전염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사람간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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