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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회> 껄쩍지근한 하루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20/09/20 [15:44]

옷을 올리라고 한다 청진기가
가슴을 더듬어 온다 갑자기 세상이 적막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뱉으라 한다
무표정이 때로는 생사권을 쥐고 있는
염라대왕보다 더 두려울 때가 있다
금속의 섬뜩한 냉기보다 먼저
심장 뛰는 소리가 달팽이관으로 흘러들어오는
오래된 노래같이 둔탁하다
젊은 의사는 청진기를 떼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천국의 별에게 안부를 묻는지
두 눈을 깜박거린다 의사의 흰 가운이
하얀 천이 되어 내 몸을 덮어온다
술 마시고 담배 많이 피운 죄 토吐하면 면죄부를 받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사망하고 계십니다 가족들은 준비하세요
라고 처방전을 써 준다
병원 현관을 나서는데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껄쩍지근한 하루

 


 

 

▲ 정성수 시인   

자정은 하루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것은 점성술이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오늘날 같이 하루의 시간이 자정을 기점으로 이루어진 진 것은 로마시대부터라고 한다.

 

처음부터 하루의 시작과 끝이 자정이 아니었다. 원시시대에는 하루는 밤과 낮으로 구분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새벽을, 바벨론이나 고대 이태리 사람들은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생각했다.

 

하루를 어떻게 소진 하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하루를 살아간 흔적은 어딘가에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깊이 생각 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떠나는 일도, 하루를 버티는 일이고, 한 사람을 보내는 일도,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수없이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날들을 살아 낸다는 것은 삶을 성실하게 깎은 연필과 같다. 설령 그 연필을 내가 쓰지 못한다 할지라도, 누군가는 그 연필로 하루를 기록할 것이다. 세상에 목적 없는 삶은 결코 없다. 다만 그것을 잊고 생각하지 않고 살 뿐이다. `하루살이냐? 천년을 산다는 학이냐? 는 마음먹기 달였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생각하라. 그게 하루를 잘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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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20 [15:4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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