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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마렵다
기사입력  2020/09/24 [16:52]   황주현 시인

이른 아침 산책길에
저절로 발길 머무는 공중화장실이 있다
쉬~ 만큼이나 짧은 詩들이
내 키 높이에 맞춰 걸려 있다

 

12행을 절대 넘지 않는 詩
4연이나 5연으로 친절히 나뉘어져
오줌발처럼 뚝뚝 끊어 읽어도 좋을

 

대략 30초면
족히 두 번은 읽혀지는 詩
눈으로 쓰윽 훑기만 해도
아랫도리까지 시원하게 탈탈 털리는

 

쉬~ 하면서
詩 한 편 공짜로 얻어가는
딱히 급한 볼일 없어도
그곳에 가면

 

자꾸
詩가 마렵다

 


 

 

▲ 황주현 시인   

자주 다니는 산책로에 공중화장실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습관처럼 화장실을 들어  갑니다. 누가 걸어 두었는지 모를 작은 액자 속 시화가 키 높이에 걸려 있습니다. 부지런하게도 두어 달에 한번쯤 새로운 시로 바뀌어 걸려 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어쩔 수 없이 무심으로 읽혀지는 시 한 편.

 

그리고 어느 착한 손길인지 모를 그 사람이 궁금해집니다. 액자를 바꿔 걸은 후 한발 물러 나 환하게 미소 지을 그 사람의 내면의 깊은 사유가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화장실이 어디 오줌만 마려울 수 있나요. 시를 마렵게 하는 1분 남짓 짧은 시간이 긴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요긴한 시간인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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