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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집에 신이 산다] 자코 반 도마엘 (사역자 코칭-유럽의 영적상태)
 
편집부   기사입력  2020/10/19 [09:05]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2242

오직 복음이 아니면 복음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복음이 희미해지고 인본주의가 극대화된 사람들과 시대가 어떻게 복음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에 대해 시험이 든 자들에게 찾아오는 영적인 회의감이 커지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모두 불합리하게 보이고 불공평하게 느껴집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는 영적인 힘이 없어서 모든 사건을 인간 중심,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면 신은 엄청나게 불공정한 존재이며 불행과 행운에 대해 아무런 근거가 없고 사람들의 불행을 재미삼아 장난을 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유럽에는 완전히 복음이 사라졌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악당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여자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아이의 방에 조그만 석상처럼 숨어 있고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하나님인 아버지는 아들을 싫어하고 보고 싶어하지 않지요.

하나님인 아버지가 하는 일은 골방에 들어가 컴퓨터로 세상을 괴롭히고 조종하는 일입니다. 어느날 딸은 아버지에게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고 나서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아버지 컴퓨터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사망일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문자로 보냅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세상밖으로 나갑니다. 딸은 새로운 신약성경을 쓰기 위해 6명의 사도를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토토의 천국을 만든 유럽의 거장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노골적인 복음에 대한 조롱과 적대적인 불신앙의 표현은 보기기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겪고 있는 심각한 영적문제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겠다는 생각과 절망의 끝에서 나름의 살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믿겠지만 그 길이 완전한 사망의 길임을 모른채 사탄의 속임수에 평생을 낭비하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이 완벽한 절망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석상으로 변해버린 예수는 동생이 부를때마다 아버지인 하나님을 골탕먹일 궁리만을 합니다. 심지어 새로운 신약성경을 쓸때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에 대한 불신을 넘어 분노로 가득한 유럽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는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주변에 일어나는 재앙과 문제는 너무나 잔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일반인들의 의문을 신을 개망나니처럼 묘사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모든 것을 안다면 신은 정말 엉망이다라는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던것 같습니다. 이는 감독의 생각과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의 세계관을 영화라는 상상으로 표현해낸 것입니다.

죽는 날짜를 아는 사람들은 인생이 바뀌고 심지어 전쟁까지 그친다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속에서 인본주의로 부각된 거의 모든 이슈가 여섯명의 사도들에 의해 조명됩니다. 심지어 신은 체류증이 없어서 추방을 당하고 에아의 어머니는 자기 남편의 컴퓨터를 초기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어머니가 만들어가는 세상으로 재편됩니다.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불신자들은 보는 모양이지만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비유가 어떤 암시를 담고 있는지 너무나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감독은 무신론자라서 성경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한 것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복음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복음의 정반대를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잔혹한 사탄숭배보다 더 극단적인 이야기가 이 영화속에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유럽의 상황이라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에게 이제 성경은 수많은 책중에 잊혀진 옛날책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화석화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럽에도 복음을 위해 깃발든 사람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처음에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어 역사를 시작했다는 설정은 웃음이 나올정도로 인본주의적입니다. 신이 몰골이 마치 심술가득한 중년의 늙은이로 묘사된 것처럼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남자역시 볼품없고 무능력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숫자가 많아지면서 신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전쟁을 했습니다.

 

너무나 지루해진 신은 재미삼아 인간을 괴롭혔고 그로 인해 인류는 슬픔과 고난과 재앙에 빠졌다는 설정입니다. 그러나 재앙과 문제에 대한 이유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전까지는 불교의 중이나 비구니처럼 머리를 깎고 고행을 해야 합니다. 복음없이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재앙의 이유를 알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이라는 존재는 이 영화속에 등장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기 나오는 신을 포함한 모든 주인공들이 사탄의 다양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후에 운명이라는 올무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영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컴퓨터가 여신에 의해 다시 시작되는 것 역시 그 컴퓨터의 주인은 따로 있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창조주는 짖궃은 신이 아니라 컴퓨터로 묘사됩니다. 유럽에서 제작되고 있는 반 기독교적 영화는 너무나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새로운 신약성경이 그림책으로 발간되고 고릴라와 사랑에 빠진 중년여인, 남자가 임신한 커플, 세탁기를 통해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애쓰는 신의 고난으로 끝이 납니다. 영적인 혼란이 극에 달하면 인간의 삶이라고 볼 수 없는 극단적인 불신앙이 창의성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곤 합니다. 혼란은 혼란이지 창작이 아닙니다. 혼란과 창의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병에 시달리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 새로운 화풍이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 문화의 흐름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사탄의 전략은 여전히 문화의 흐름을 바꾸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가진 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대충 복음을 가지고선 그들을 살릴 수 없습니다. 2천년전 바울의 서신서는 오직 복음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사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출처] 2020년 10월 19일 오늘의 영화 : [이웃 집에 신이 산다] 자코 반 도마엘 (사역자 코칭-유럽의 영적상태) (문헌정보팀 WE) | 작성자 문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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