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성이야기가 있는 인문학(이 인) 대표

지난 8일 울산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다. 불길은 거셌고 건물의 상층부가 그 불길에 휩싸였다.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 14시간이 지나 불길이 잡혔다. 그리고 사망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은 기적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울산의 이 가슴 아픈 대형 화재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냈다. 치솟는 불길을 뚫고, 20 킬로그램이 넘는 산소통과 장비를 메고 33층 아파트를 뛰어 올라가 주민들을 구조한 소방관들. 당시 28층 자택에서 대피하던 중 위층의 아기와 임산부를 구출하고, 주민 18명의 구조를 도운 아파트 주민. 급하게 탈출하느라 잠옷에 맨발로 뛰쳐나온 주민에게 코트와 신발을 주고 가신 분. 소방관들에 휴식처와 현장 지휘소를 내어준 벤츠 전시장. 화재로 집을 잃은 입주민들에게 호텔 숙식을 제공한 신라스테이호텔. 이런 모습을 세계 어느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나라가 재정 위기에 빠졌을 때 선 뜻 자신이 끼고 있는 금반지를 내 놓는 나라 백성들이 아니면 도저히 이렇게 `용감무쌍`한 일을 할 수 없다. 이렇게 소방관, 주민, 기업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코고 작은 힘들이 모여 위기를 이겨낸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우리`의 위험한 상황에는 반드시 `나`의 위험이 포함된다.

그래서 나의 위험을 감수하고 타인의 위험에 뛰어든다는 것은 매우 큰 의(義)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말에서 우리는 이러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사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고, 죽는 것보다도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을 피하지 않는다" 는 말이다.

(生亦我所欲 所欲 有甚於生者 故 不爲苟得也 死亦我所惡오 所惡 有甚於死者 故 患有所不辟也)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간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찌 이익을 말하겠는가. 타인의 위험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다. 나만 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너와 살겠다는 행동이 우선하게 된다.

바로,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孟子曰 仁人心也 義人路也)는 말이다. 이번 화재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울산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게 된다. 맹자는 이루장구 상편(離婁章句 上)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길 만한 짓을 한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며, 집은 반드시 스스로 자기 집안을 망친 뒤에 남이 그 집안을 망치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할 만한 짓을 한 뒤에 남이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

(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 家必自毁而後人毁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 스스로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할 만한 짓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서로를 돕지 않을 때, 우물에 아이가 빠지려 하는데도 아무도 본 척 하지 않을 때, 나를 잊고 남을 돕지 않을 때, 그 나라 사란들은 스스로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할 만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우리나라는 나를 잊고 남을 돕는 나라라는 것을, 나의 옷을 벗어 너에게 벗어주는 나라라는 것을, 남의 어려움에 기꺼이 나의 손해를 감수하는 나라라는 것을 말이다. 긴 역사 속에서 왕정을 벗어나 민주의 시대를 처음 맞이할 당시의 혼란이 아직 우리의 의식기저에 존재한다. 무엇이 올바른 국가모델인가는 아직도 실험단계에 있는 듯하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된지 불과 100년 남짓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고, 경제상황 마저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혼란하고 힘든 일이 계속되는 중이다. 그로인해 몸과 정신의 피로가 끊임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울산에서 보았다.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