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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는점
 
조용숙 시인   기사입력  2020/11/23 [17:08]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흘러내리는 뱃가죽을 바지 속에 쓸어 담으며

 

솟구칠 줄만 알았던 열망들이

 

평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본다

 

내가 알던 백네 살 할머니도

 

그렇게 흘러내렸던 거라

 

가슴에서부터 흘러내린 살가죽이

 

배꼽 아래까지 흘러내려와

 

생의 욕망들이 파놓은 욕창 하나를

 

가만히 쓸어 덮고 있었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던

 

성질머리도 녹아내려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위로 솟구치기만 했던 생의 뿌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려

 

지난 허물들을 덮어주고 있었다

 


 

▲ 조용숙  시인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너무 낯선 내 얼굴을 발견했다. 이마에서부터 주름이 쩍쩍 가기 시작한 얼굴에는 분명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늙음이라는 화두가 이마를 툭 치고 달아났다.


내가 늙어가고 있었구나! 반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중력의 법칙 앞에서 망연자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늙는다는 것. 젊음의 뒤안길로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 이것은 또 내 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그 후로 한동안 나는 늙음이라는 사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시절, 만났던 백네 살 할머니였다. 젊어서는 그토록 강하고 똑똑했다는데, 어느새 할머니는 바지춤 아래 생긴 커다란 욕창이 썩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무던히 견디셨던 것.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살가죽이 욕창을 덮고 있어서 매일 매일 옷을 갈아입히던 며느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삶은 결국 녹아서 흐물흐물 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아 흐른다는 것.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고집스레 지키고 싶었던 본래의 형체를 버리고 흘러내린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향한 새로운 소통의 몸짓이었다. 그 어떤 것도 다 품을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이번 시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 시인의 말에 "나는 지금 무럭무럭 늙어가는 중"이라고 적었다. 잘 늙는 것은 결국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이라고 받아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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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3 [17:08]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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