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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바람
 
김재범 도예가 자운 세라믹아카데미 대표   기사입력  2020/11/29 [16:13]
▲ 김재범 도예가 자운 세라믹아카데미 대표    

11월이 지나면 경자년 달력도 두산리 옆집 감나무 잎사귀처럼 바람에 다 떨구고 한 장만 덩그러니 남게 될 것이다. 공방(스튜디오)을 이곳 관문성 앞마을로 옮긴 후부터 바람의 정체를 더 실감하게 되었다. 어느 겨울 제주도 여행길에 모슬포 바람이 소문대로였고, 울산에 살면서 방어진 바닷바람이 사납다 느끼곤 했지만, 평범한 시골 두산리 바람이 매서울 줄은 미처 몰랐다.

 

마을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공방이 자리한 땅은 "옛날엔 골짜기라 별 쓸모가 없었다"며,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은 땅을 알려줬을 거란 말씀을 덧붙이신다. 해발 100미터 골짜기(?)에서 일으키는 바람을 골바람이라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공방 입구에 자작해 만들어 세워둔 간판은 올봄 일찍이 찾아온 골바람에 넘어져 산산조각이 나면서 간판 없는 가게가 되고 말았다. 어디 그 뿐 아니다, 안전하고 편리할거란 생각으로 태양광 등을 스무 개 가량을 외곽 담벼락에 붙이고 조형작품에 꽂아 두었는데 아마도 3분의 1은 떨어지고 날아갔지 싶다.

 

아까운 생각에 널 부러진 조각들을 주어서 다시 고쳐 써보려 만지작대기도 해봤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만 따먹는 충이 다름없다. 그 시간에 그릇하나라도 제대로 빚어서 새것으로 장만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꿀떡 같지만, 그릇 파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다 보니 쓸데없는 일로 간간히 혼을 빼앗기곤 한다. 이놈의 골바람이 부쩍 신경을 쓰이게 하는 건 한 가지가 더 있다.

 

공방의 외벽이 복합징크패널로 되어 있는데, 견고성과 시공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징크(Zinc)골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 때는 공명이 생긴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강하다 싶으면 골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더 크고 생생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외벽에 설치한 어닝(awning)이 덜컹이며 펄럭이는 소리는 더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징크패널이 잡아주는 힘이 일반 철근콘크리트에 결속된 견고성과는 차이가 있는데다 보수도 난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 싶은 날이면 어닝을 최대한 말아 올리고 사전 대비를 해두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는 편이다. 이렇게 바람이란 놈은 어느덧 나에겐 심술쟁이 정도로 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보고서야 바람이 참 이로운 일도 퍽이나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신 분은 다들 아실만한 유명한 시인이다.

 

올 봄엔가 은퇴를 하고 시골집에 귀향하여 퇴후지지(退後之地)중인데, 그곳도 바람이 애를 태운 듯하다. "갈참나무가 마지막 남은 도토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느티나무가 가지 끝에 잎사귀를 떠나보내기 위해, 박주가리가 씨앗을 더 멀리 시집보내기 위해, 배추가 속을 단단히 채우기 위해, 11월에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가만히 있던 바람이 그래서 더 세차게 부는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11월의 바람이 거칠었던 이유를 나에게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다.

 

`바람`이란 것은 공기의 빠른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기온의 지역편차가 커 상승하는 지표면과 상층의 온도차에 의해 강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남고북저와 같은 기압에 의한 강풍이 만들어진 때에 아주 강하게 분다고 한다.

 

사회적으론 11월부터 시작해서 대개의 기업들이 인사를 단행하는 시기로 그에 따른 자리이동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인사는 한해를 서둘러 정리하고, 다가올 새해를 힘차게 열고자하는 희망이 반영된 변화의 바람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는 뜻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바람`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바람의 속뜻에는 실이나 새끼를 재는 단위로 쓰이는 `바람`이 있는데 `한바람`은 사람이 양팔을 뻗은 길이를 말한다. 아무리 크고 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재는 척도는 바로 자신인 셈이다. 바람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 애당초 바람 그 자체, 자연그대로 당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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