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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편백나무들이 있다
 
정종식 편집국장   기사입력  2021/01/17 [16:20]
▲ 정종식 편집국장     © 울산광역매일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오를 때는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모두 똑같아 보인다. 정상에 올라 한숨을 돌린 뒤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그 제야 여기 저기 숲속에 쭉쭉 뻗어있는 편백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편백나무는 그 기상부터 잡목과 다르다. 구부러짐이 거의 없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어 오만함이 배어나올 정도다. 왕 사방 오리나무는 잽도 안 된다. 성장 배경부터 다르다. 어릴 때부터 꼿꼿이 자랐으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편백 무리 속에 입성했다. 졸참나무는 눈 아래 뵌다.

 

둘 다 가구재에 쓰이고 추위에 강하지만 족보가 다르다. 백(栢)에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다. 엄동설한에 그나마 소나무와 대나무가 곁에서 퍼렇게 노려보고 있어 편백나무의 오만함이 거만함에 그칠 수 있다. 이런 독야청청(獨也靑靑)마저 없었으면 노송나무의 안하무인이 뭇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고약한 게 사람 마음이다. 효용 가치 때문에 사람들은 편백나무를 더 선호한다, 피톤치드를 내뿜어 항균 작용을 하고 면역기능을 높인다고 하자 너도 나도 노송나무에다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가 하면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향내를 들여 마시는 시늉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아토피 치료와 알레르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매스컴 보도에 욕실과 고급주택을 이 노송나무로 도배를 한다. 편백나무는 군락을 짓는다. 그래서 하늘을 뒤 덮을 정도로 솟은 나무들이 몰려 있는 곳에 가면 사람들이 음습한 기운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을 대규모로 심은 쪽은 사람이다, 20~30년 전만해도 자연 생 편백나무 몇 그루가 있던 곳에 몸에 좋고 병 치료에 용하다고 하자 사람들이 나랏돈을 수십억, 수백억 씩 들여 무턱대고 수천, 수만 그루를 심는 바람에 지금은 오히려 처치 곤란 상태다.

 

생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인공 조림하는 통에 결국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형국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자랄 대로 자란 편백나무들을 함부로 처리하기도 곤란하다. 국가가 많은 돈을 쏟아 부운데다 환경단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서로 부대끼는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 곁가지 치기 정도라도 해야 하지만 그 마저 쉽지 않다.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수십 만 명이 서명을 올려 `아무 아무개가 나무를 뽑으려고 하니 이대로 두지 말자`고 하면 나무를 솎아내자고 주장했던 사람은 졸지에 대역죄인 취급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편백나무 근방에 얼씬거리지도 말아라, 이 나라를 떠나라, 편백이냐 소나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등등 야단법석을 떨게 분명하다.

 

그런데 희한하게 산새들은 편백나무에 잘 날아들지 않는다. 나무가 밋밋해 비빌 곳이 별로 없는 탓도 있겠지만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코로 들여 마시고 몸으로 빨아들이는 향기가 그들에겐 역겨울 수도 있다.

 

태풍에 꺾여 나뒹구는 모습도 여느 잡목과 그리 다르지 않다. 희멀건 속살을 드러낸 채 중간 허리가 툭 꺾여 길게 드러누운 모습이나 뿌리 채 뽑혀 나뒹구는 모양새는 잡목보다 오히려 더 을씨년스럽다. 잡목은 대충 이리 저리 잘라 불 아궁이에 쑤셔 넣기라도 할 수 있지만 노송나무는 그러기도 어렵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한 때 중근동 바빌론 병사들의 창(槍)으로 사용될 정도였는데 땔감으로 소모하기엔 좀 그렇지 않은가. 특히 사람들이 이미 곳곳마다 이 나무에 팻말을 붙여 뭣에 좋다, 뭣에 효능이 있다며 있는 칭찬 없는 자랑을 모두 늘어놨기 때문에 불쏘시개로 사용하기엔 이미 멀리 와 있다.

 

한 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半풍수 집안 망치는` 재료 쯤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정말 고약하다. 그럼에도 편백나무 묘목들을 지난해 봄 또 산속에 옮겨 심었다. 그곳에 가보면 서슬 퍼런 20년생들 틈새에서 지지대에 기댄 채 어린 나무들이 오솔길 곳곳에 심어져 있다.

 

하지만 20~30년생들의 위세는 여기까지 미친다. 족히 20m 가까운 위상이 산골짝 안 쪽까지 깊숙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식재된 햇병아리 편백 묘목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쫑알댄다. 늙다리들 때문에 기를 펼 수가 없어. 저 정도 폼 잡고 떵떵거렸으면 이제 이 산에서 좀 사라져 줘야 하는 거 아냐. 사람들도 참 이상하지. 이렇게 한 쪽에 몰아넣고 푸대접을 하려면 우릴 심긴 왜 심어. 누군가 저 늙다리들을 4년마다 한번 씩 솎아내야 해. 하늘을 온통 가리고 있어 햇빛을 통 볼 수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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