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바다에 와서 서랍을 떠올리네 좋았던 시절은 다 서랍에 있네 칸칸이 꽃피고 살림하느라 반짝이는 서랍들
풍랑 이는 바다를 보지 못했네 밀치고 당기다가 튕겨 나간 못과 생채기들 서랍째 바다에 버렸더니 도로 떠올랐네
섬이라는 혹 너라는 참혹
바다도 서랍과 같아서 밀고 당기는 일이 숙제와 같아서 한 생이 지나가면 다른 생이 오듯 가만히 등을 쓰다듬는 파도라는 큰 손
설악 바다에 와서 나를 열어 보네 칸칸 서랍마다 부릅뜬 눈알들 왜 바다를 보면 작아지는지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리는지
저마다 소중한 서랍이 하나씩은 있다. 그 속에는 간직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 묵은 서랍을 열면 바다가, 파도가 출렁거린다. 설악 바다, 그 푸른 파도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부서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기억 속 서랍을 내다버리지만 상처는 혹처럼 아니 섬처럼 그 자리에 있다. 그때 파도는 다가와서 등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꽃 피는 시절도 풍랑의 시간도 살아있어 누리는 축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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