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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수업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21/01/18 [16:25]
▲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 울산광역매일

이번 해 자유학기제 주제 선택 프로그램으로 운영한 나의 국어 수업 주제는 두 가지였다. 두 가지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그중 나에게 더 많은 울림을 남긴 수업은 바로 `자서전 쓰기 수업`이었다. 프로젝트 수업으로,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운 자서전을 만드는 것이 수업의 주된 흐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만으로 12년 정도 살아온 학생들에게 `자서전`을 남길 내용이 있냐는 것이 대부분 어른의 반응이고, 옛날 일들이 기억이 안 나서 쓸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대부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질문에서 프로젝트 첫 단추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수업은 매우 유익하게 흘러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는지, 성찰하는 것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인생 그래프로 지나간 12년을 교사와 함께 되돌아보고, 나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었는지 공유해보면 생각보다 나의 지난 시간이 사랑과 사랑스러운 사람과 사랑스러운 일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단순하게 `자서전을 쓰세요`라는 발문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구체적인 질문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알려주세요.`와 같이 평범한 질문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맛이 생각나면 알려주세요.`, `내가 가장 가지고 나서 기뻐했던 물건이 있다면 알려주세요`까지 말이다. 소싯적 많이 해봤던 100문 100답과도 비슷한 형식이다.

 

이 수업의 목표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물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단순하게 자서전이라는 책을 만들어내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괜찮은 글을 쓰고 엮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목표는,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그 나날들로 인하여 자존감과 사랑을 충전할 수 있는 자서전 한 권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사소한 질문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나`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글의 서두에 `어린 시절이 생각나지 않아서 쓸 수가 없을 것 같다`라는 말은 대부분의 중학생이 제일 먼저 고민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

 

 

물론, 출생 무렵과 유년기가 또렷하게 기억나는 학생들은 드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자유학기 주제 선택 수업의 과정 중에는 늘 가족과 함께하는 과제가 포함된다. `출생 전후의 사진 한 장과 당시의 순간을 간단하게 메모해보자`라는 내용이다.

 

중학교 1학년의 출생 전후 시기를 가장 잘 알고 계셔줄 분은 단연 부모님이나, 형제, 가족일 것이다. 이 과제를 하기 전과 후의 학생들이 자서전에 임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제가 두 달이나 빨리 태어났데요.` `할머니께 여쭤봤는데요, 저는 태어났을 때 엄청나게 통통해서 좋으셨데요,` `형이 그때는(?) 제가 정말 귀엽고 좋았대요.`

 

이렇게 영아기, 유아기, 소아기 등 12년을 잘게 구분 지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해당 시기의 사진을 수집해서 오면 자서전을 만들 준비는 모두 끝난 것이다.  옆의 친구와 사진을 바꿔보고, 혹은 같은 유치원에서 같이 찍힌 사진을 보고 넘어갈 듯 웃는 학생들의 모습들은, 자서전을 글로 표현하는 순간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뭇 진지하게 바뀌어있다.

 

 

어떠한 글짓기 수업보다 진지하고, 가치 있으며, 성찰할 수 있는 프로젝트 수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완성된 학생들의 자서전을 한 장씩 넘겨볼 때면 이 친구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떠한 시간이 쌓여 지금의 중학생이 되었는지 한눈에 그려질 만큼 소중한 책이 된다. 독자인 교사가 보기에도 이렇게 소중한데, 학생들의 손에는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 되겠는가.

 

긴 호흡에 프로젝트 수업으로 설정하여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주제이긴 하나, 학기 말에 교과서 진도 끝 무렵에 한두 시간을 할애하여 수업하기에도 좋은 내용이다. 첫 번째 시간에는 인생 그래프와 100문 100답 정도로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다음 수업의 과제로 가족들과 사진을 함께 찾아본 후, 두 번째 시간에 짧은 책을 만들어도 좋으니 말이다.

 

글짓기 수업이란 꼭 서론과 본론, 결론을 나누어 내 생각을 피력하는 과정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마음을 다하여 글을 쓰는 것만큼 좋은 글짓기 수업은 없을 것이다. 나를 잘 아는 것만큼 소중하고, 또 중요한 일은 없다. 학생들과 함께 돌아본 12년이, 앞으로 120년은 거뜬히 함께한 원동력이 되어주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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