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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공책은 연필을 기다린다
 
문영애 시인   기사입력  2021/02/25 [15:13]

  쓰다보면 

  어느덧 

  한 권의 책이 되는 

  비어있는 공책 

 

  처음 만났던 기억은 

  칸칸이 네모 방 

  못자리 공책이었지 

 

  연필에 힘을 실어 

  글씨를 다져나가면 

 

  침 묻은 연필심에

  씨앗이 움터

  나의 시는 

  그렇게 파종이 되었다 

 

  안으로 새카맣게 타들어간 

  속심지 몽당연필

  퀭하게 닳도록 

  몽그라져 할근거려도 

  

  햇발에 잘 표백된 칼칼함으로 

  언제든 등을 내어주고 

  업어주던 공책 

 

  페이지를 넘기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시를 쓰고 싶은 날 

  파피루스 풀내음 진한 

  나일 강변으로 떠나볼까 

 

  공책을 펼치면 

  연필은 여전히 가슴 설레인다

 


 

▲ 문영애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비어 있던 공책은 겉으로 봐서는 그야말로 아무데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이것을 일상 한가운데에 놓고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읽을 수 없으며, 따라서 정보로서의 가치는 전무하기에 그 효용 가치는 그야말로 제로(0)에 가깝다. 하지만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책은 ‘아직’ 쓰여 있지 않았기에 ‘이미’ 쓰여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가만히 살펴보면, “씨앗” “파종”과 같이 농사를 연상케 하는 시어들이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내밀한 텃밭, 즉 공책에는 이미 그 열매인 시어의 씨앗들이 심어져 있다. 한겨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서 황량하게 보였던 땅도 봄이 오면 그동안 품었던 생명의 싹을 틔우듯이, 그 순환과 반복이야말로 시에 내포된 ‘섭리’인 것이다.

 

 

문영애 시인

 

밀양 출생

2015년 계간 《시산맥》에서 작품 활동시작

2019년 《한국미소문학》등단

2020년 《시산맥》감성기획시선 시집 공모 당선

시집『바다의 테라피스트』

음악교사에 이어 음악치료, 

원예치료 등 테라피에 관한 학문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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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25 [15:13]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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