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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칼럼>유희(遊戱)
 
김재범 논설위원 도예가   기사입력  2021/02/25 [15:14]
▲ 김재범 논설위원 도예가     © 울산광역매일

  흙 작업을 통해 작품을 빗거나 작업 구상을 하며 하루를 지치는 것이 도예가의 일과다. 시작할 때 보다 마칠 즈음이 되면 몸은 고단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종종 사로잡히곤 한다. 마치 예쁜 꽃씨 한 톨 심어놓고 꽃망울을 활짝 터트릴 날을 기다리는 가슴설렘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도예가라서 특별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슴 한편에 보물처럼 숨겨 두고 있는 그것을 나는 유희라고 말한다. 유희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위로 같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음의 산물로 얻은 자신에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랄까? 

 

  잠시 자존감이 떨어질라치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매주 주말이 되면 공방으로 도자기물레를 익히러 오는 사람들에게서 각각의 보물들을 발견하곤 한다. 어떤 한 사람이 “시간이 정말 잘 간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은 물레를 돌리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 다른 생각할 틈이 없다” 그다음은 “저녁을 먹자말자 뻗어(잠들었다) 버렸다.” 등등 지난주 수업 후일담까지 털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각기 투박한 말속에서 자란 삶의 유희에 관한 언어이다. 

 

   흙일하는 도예가들 대부분이 하루가 고단할 것이다. 그 연유는 혼자 공방 일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한 손이라도 거든다면 천군만마가 다름없다. 그런 도예가들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칠팔십 퍼센트는 허드렛일에 가까운 단순하거나 막노동에 버금가는 일들이 차지한다. 그 일들이 결코 건너뛰거나 소홀해 선 안되는 과정들이다. 조금 여유가 있으면 허드레 부분은 사람을 써서 힘든 일을 줄이고 본연의 창작에 매진하는 작가들도 많다. 

 

  현명한 방법이긴 하겠지만, 한 과정마다 혼을 쏟는 태도가 오롯이 그릇이 되는 것이니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 듯싶다. 매일 수도승처럼 정진해야 할 대상이라면 건너뛰고 생략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맘처럼 그게 쉽게 되지 않는 현실도 있으니 유희를 알아갈 방도는 다양하고 천양지차다.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 해방감을 누려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포만감의 쾌감을 느끼며 힐링을 얻었노라 만방에 외쳐 보기도 하는 거다.

 

  그래서 힐링이란 말은 어느새 우리 숨 속에서 보통 명사로 공고히 자리 잡은 듯하다.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도 ‘힐링하고 싶다, 힐링하자’는 말을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 각자 어떤 깊이 만큼 힐링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것인지 짐작할 수밖엔 없다. 게다가 사전적 의미가 그다지 중요치 않지만 ‘치유되다, 치유하다, 낫게하다’란 뜻으로 상처를 치료한다는 말로 쓰인다. 그렇다고 외상 수술 같은 인위적인 치료행위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힐링(healing)이란 말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함께 유행의 정점을 경주할 때인 10여 년 전쯤 한 방송사 인기프로그램 중에 지친 마음을 힐링시켜 줄 신개념 토크쇼 ‘힐링캠프’가 대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내며 가슴 후련해지고 스스로 치유를 얻는 취지였다. 대중가요 중에 ‘힐링이 필요해’라는 곡이 한창 불리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무엇이든 이름에 힐링이 들어가야 성공할 정도였다. 그러나 속마음조차 털어놓을 용기가 없는 경우라면 해법이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흙이라는 재료는 사람의 감정이 쓰고자 하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마치 상선약수(上善若水) 처럼 최고의 선이 물과 같다고 하는 이유가 ‘물은 만물을 잉태하는 근원이지만 자신을 항상 낮은 곳에 두어 다투는 법이 없으니 허물 또한 생길 수 없다’한 것과 같다. 흙은 늘 밟히고 털리거나 쓸려나가기 일쑤지만, 각자의 개성에 자신을 맡겨둠으로 그 개성이 결국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로 탄생하게 된다. 

 

  뜻하는 대로 안 되거나 마음먹은 만큼 하지 못해 쌓이는 것이 근심 이거나 화이다. 특히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더욱 자신의 마음을 돌볼 시간이나 여력이 절대 부족하다. 삶의 틈바구니에서 가끔은 여유를 찾은 것만으로도 내일 힘차게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 근심 한 조각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일수록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흙은 자신의 은밀한 감정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힐링소재’이며 삶을 꿈꾸는 유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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