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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내 마음의 스승
 
양소빈 북구 천곡초 행정실장   기사입력  2021/05/17 [17:21]
▲ 양소빈 북구 천곡초 행정실장     © 울산광역매일

 알렉시티미아는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로 감정표현불능증이라고 한다. 아동기에 정서발달 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하거나 심한 트라우마를 겪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전학을 가면서 겪은 나의 학교생활을 떠올려 보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었다. 말을 안 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물어보는 이가 없었기에 그리고 대답 대신 미소로 답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말이 적은 대신 수업 중에 선생님 말씀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잘 듣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모기 만한 작은 목소리와 사뿐거리는 얌전한 몸짓으로 옆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 존재감이 없었고 수업 시간에 손들고 발표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겁쟁이였다. 발표해서 틀릴까 봐 망설여지기보다는 목소리가 작아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제대로 못 알아들어 큰 소리로 다시 이야기해보라는 요구가 있을까 봐 연약한 나 자신이 창피해질까 하는 우려가 더 컸던 모양이다. 약한 체력으로 겨우 책가방만 메고 힘없이 비실거리는 말없는 아이가 바로 내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나를 위해 약국에서 성장과 발육에 효과가 좋은 신제품 동물 모양 추어블 영양제를 사 오셨고 어머니는 학교에서 먹는 우유 급식과는 별도로 가정에서도 매일 한 팩씩 먹을 수 있도록 우유 배달을 신청하셨다.  

 

 학교 수업을 경청하면서 눈으로 곧잘 따라간 덕분에 성적은 좋았던 나에 대해 담임선생님은 두뇌 명석하나 말이 없음으로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셨다. 부모님은 나의 발표력 평가에 상중하 중에 하를 주신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을 숨기지 못하셨다. 선생님의 이러한 평가로 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감정의 동요 없이 매우 침착한 태도를 지닌 아이로 규정지어졌다. 

 

 학교급식이 없던 시절 선생님 점심 식사는 외부 식당에서 배달이 왔다. 1층 현관 숙직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4학년인 내 차례가 되면 밥, 국, 반찬 그릇, 수저가 놓인 큰 쟁반을 받아 들고 4층 우리 반 교실로 올라가 선생님 책상에 식사 쟁반을 놓아드린 후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아마도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올라와야 하기에 가장 조심성 있고 얌전해 보이며 불평 없고 군말 없는 내가 선생님 식사 도우미로 당첨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5학년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작년에 선생님 식사 도우미 한 적 있는 사람을 물으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의 성실한 식사 배달에 항상 고마움을 표현하셨고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학급에서의 나의 이미지와 인지도가 차츰 올라갔다. 반 친구들이 내 주변에 와서 모르는 것을 묻었을 때 친절하게 답해주기도 하자 어느새 편안하게 다가와 주는 친구가 여럿 생겼다.

 

 5학년 담임선생님이 6학년으로 함께 올라와 또 다시 담임선생님이 되셨을 때 선생님과의 호흡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교기 육성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육상대회 학생인솔로 출장이 잦으셨다. 출장 가시기 전날 나는 선생님과 남아서 교사용 지도서를 함께 보며 다음날 가르쳐야 할 분량을 파악하고 다음 날 나는 선생님을 대신해 선생님의 지시대로 칠판에 판서해 가며 친구들을 가르쳤다. 가르쳤다기보다는 흑판의 내용을 친구들이 노트에 필기하도록 독려하는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선생님의 공백임에도 친구들이 잘 따라주었고 다음 날 출장을 마치고 교실로 되돌아오신 선생님께서 전날 진도 나간 내용에 대해 물으셨을 때 친구들이 빈틈없이 잘 답해주었기에 나는 선생님의 보조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선생님의 신망과 친구들로부터 인정이 커짐과 동시에 체력도 튼튼해져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했고 더 이상 작은 목소리의 아이가 아니었다. 어느덧 친구들 앞에서 씩씩하게 발표도 하고 조리 있는 말로 학급 회의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6년간의 학업을 마무리하는 중학교 입학 배치고사에서 입학식 날 대표로 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해 준 담임선생님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 마음의 스승으로 영원히 기억될 만큼.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선생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만약 담임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쩌면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알렉시티미아에 해당하는 증상이 일시적 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고 먼저 다가가는 법 또한 몰랐다. 상대방에게 표현할 필요가 없을 만큼 내 감정 또한 기복도 없어서 밋밋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이어서 주변 상황에 좌우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졌고 왜 저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의문스러웠다. 선생님을 만난 후로 나는 정서적으로 정상적 발달 수준의 초등학생이 되어갔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키워주신 자존감 덕분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기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서 작은 성공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큰 성취로의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 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지적 탐구심을 키워주신 나의 담임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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