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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처음 한 김장
 
김용숙 수필가   기사입력  2021/12/06 [17:19]
▲ 김용숙 수필가     © 울산광역매일

 김장철이 되자 걱정이 앞섰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해마다 언니와 올케가 보내준 김치로 겨울을 났다. 이제 언니랑 올케도 나이가 들어서 계속 얻어먹기는 염치가 없다. 올해부터는 홀로서기를 할 겸 김장을 직접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는 가사지원사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그러하겠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김장하는 날이 왔다. 절임 배추는 전날 저녁에 물이 빠지도록 소쿠리에 엎어놓았다. 가족에게 먹일 배추가 소쿠리에 수북이 올라온 것을 보니 만석꾼이 된 것처럼 흡족했다. 가을에 높다랗게 쌓인 낟가리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이러하리라. 수육거리는 미리 사다 놓았다. 유년시절에 김장을 마치면 가족과 이웃 아주머니들이 갓 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먹던 모습이 떠올라서 즐거웠다. 

 

 현관에 들어서는 가사지원사가 평소보다 반가웠다. 그런데 그녀는 김장에 필요한 일이 아닌 평소처럼 집안일만 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약속이 빗나갈 것 같은 예감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원래 김장은 가사 도움 영역에서 제외된 일이지만 정해진 규정을 떠나서 정으로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여겼는데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역시 그녀는 마칠 시간이 되자 단말기에 카드를 찍더니 현관문을 나섰다. 

 

 눈앞이 캄캄하고 당황스러웠다. 가사지원사에게 이러고저러고 따지는 일은 앞으로도 함께 지내면서 좋은 처사가 아니라는 걸 지금껏 경험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내가 전화할 때는 몰랐다가 김장 도와주는 일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틀 전 이야기 끝에 규정 위반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도와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암초에 부딪힌 것처럼 암담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인터넷 창에 `김장하기`를 쳤다. 김치 종류마다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맛국물을 끓이려면 커다란 냄비에 물을 채워 불에 올려야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서 있는 것도 힘든 내가 어떻게 무거운 냄비를 든단 말인가. 그러나 사람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먼저 올려놓고 바가지에 물을 조금씩 받아서 부었다. 명태 머리, 육수용 멸치, 다시마, 무, 파를 넣고 불을 켰다.

 

 물을 끓여 식히는 동안 무는 채 썰고 갓이랑 파는 뭉텅뭉텅 크게 썰었다. 불편한 몸이라 채소를 써는 일도 만만하지 않았다. 급할수록 천천히 쉬어가는 것이 빠른 길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쉬엄쉬엄했다. 다 식은 맛국물에 고춧가루를 풀었다. 마늘과 생강을 넣고 새우젓과 멸치젓으로 간을 했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다. 짰다. 맛국물을 더 넣었다. 이번에는 싱거웠다. 간을 맞추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눈이 자가 되고 손이 저울이 되는 데는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득되는 모양이다. 

 

 마늘, 생강, 고춧가루, 젓국 모두 맛이 강한 양념들이다. 그런데 함께 넣어 치대면 서로 융화되어 감칠맛이 난다. 어느 것도 자기주장을 더 내세우지 않는다.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울림을 주는 메시지 같다. 이번에는 양념에다가 김치의 시원함을 더하기 위해 채 썬 무와 갓을 넣어 휘휘 저었다.  

 

 이제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김치가 된다. 절인 배추가 짜면 양념을 싱겁게 하고 배추가 싱거우면 양념을 짜게 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이 나서 간을 약간 더 했다. 입이 넓은 함지박에 배추를 넣고 양념을 한 움큼 잡고는 배추 밑줄기 부분부터 골고루 넣었다. 잎과 고갱이는 손에 묻은 것으로 쓱쓱 문질러 발랐다. 굼뜨던 손도 갈수록 속력이 붙었다.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은 새색시처럼 고운 김치를 통에 꾹꾹 눌러 담았다. 

 

 김장을 혼자서 마치고 나니 뿌듯했다. 처음에는 가사지원사가 야속하고 섭섭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고마웠다. 신은 우리에게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다는 말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는 난감함을 넘어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은 힘이 들더라도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큰 복이다. 

 

 이제 김장하는 일이 두렵지 않다. 아무리 애송이라도 노력하면 못할 게 없을 성싶다. 세상은 도전의 장이다. 관망만 하는 삶에서는 무엇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강으로, 바다로 끝없이 도전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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