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한 잎씩 손질하다 보면
그늘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우기의 계절이 쏟아졌다
음지와 양지를 번갈아 껴안은
벌레 먹은 아침에도 담쟁이는 벽으로 자랐고
먼 곳을 돌아와 피었어도 나팔꽃은 한창의 나이였다
꽃이 피기까지 녹슨 철문을 바치고 있던 손은
이윽고 그늘이었다
일기예보는 자주 맞지 않았고
어느 주말 오후같이
그늘은 아무렇지 않게
골목마다 피어나고 있었다
더는 하늘을 보지 않아서
그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감하지 않아도
나는 또 꽃이었다
<시작노트>
그늘은 절망과 희망 그 어디쯤에서 피는 꽃일지 모른다.
이 두 세계에 의해서 이중의 반향을 갖는다
그래서 슬픔과 고통 속에서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견디고서 더 찬란해질 수 있는 존재
한 송이 서러운 꽃인 것이다.
김정미
2015년 『시와 소금』 등단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
시집 『오베르 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2017년 춘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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