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드문드문 켜진 불빛 같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였다
익숙한 것은 낯설어지고
낯선 것이 지루해지는
한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빗줄기 사실은
슬픔 사이로 달려들었으나
젖지 않았으므로
더욱 붉어졌으므로 저마다
선잎 사이로 흘렀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나 서어나무
긴 이파리 하나가 무량수전 뒤 큰 산을 안 듯
연꽃 아닌 것들이 바닥에서
마디를 짓고 뿌리를 내린다
깊고 다정한 내일도 텅 비었으나
슬픔은 아직 내 안에 여러 겹이다
<시작노트>
요즘은 북천수 소나무 숲길을 맨발로 걷거나
무를 키우는 무청의 빛이 더욱 짙어지는 것을 보며 지냅니다
나무가 만드는 그늘이거나 바람이거나 별과 햇살처럼 무용한 것들은
한숨의 미풍에 날아가는 굳고 빛나는 맹세가 아니어서*
언제나 변하지 않아서
삶에 큰 힘과 위안을 줍니다
이 위안과 힘으로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잘 살아갑니다
이제 무엇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나온동희
서울출생
2012년 진주가을문예 당선
시집: 당신의 벽에는 원래 시계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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