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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배를 끄는 사람들
 
안은숙 시인   기사입력  2022/12/01 [17:41]

 배를 끄는 사람들*, 물결이다

 배는 물의 방향 

 키는 더 이상 풍향의 흔적이 없다

 

 물결의 낯빛엔 거칠고 투박한 바다가 묻어있다

 백 년 전의 노동이  

 색 하나 바래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다니

 

 노동의 풍경이 명작이 될 수 있다고

 백 년 동안 배를 끄는 사람들,

 액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이다

 

 밧줄이 물결을 지시하고 있다

 

 뭉쳐져 이끄는 것은

 간절한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배가 물결을 탄다

 

 물결은 울퉁불퉁한 근육을 지녔고

 왁자지껄한 선술집의 목소리를 가졌다

 구령 소리가 붙어있다

 방향이 막힌 곳과 부딪히는 또 다른 물결은 부푼다

 

 뭍으로 올라온 부분은 물의 선두가 되고 

 부력이 빠진 배는 물의 위

 물의 속도가 사라진 배는 지친 노동이고 부력이다

 

 고장 난 물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해 

 배를 끄는 사람들

 먼바다 물결이 얼룩처럼 보인다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는 

 어느 것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 일리야 레핀의 작품 - 볼가강의 배를 끄는 사람   

 


 

 

▲ 안은숙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이 시는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Ilya Repin, 1844~1930)의 작품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그림에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배에 연결된 밧줄을 자기 가슴에 걸고 힘겹게 배를 끌어 올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열한 명의 인부들은 표정과 태도가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체념한 듯 앞만 응시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지쳐 쓰러질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한 젊은 사람은 반항하듯 밧줄을 손으로 잡고 있다. 비평가들은 레핀이 볼가강의 인부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얼굴에서 절망만 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흔적과 인간적인 아름다움, 강인한 육체의 힘을 보았다고 해석했다.

  노동 현장을 보는 사람의 시선과 사유가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낀다. 노동의 풍경을 명작으로 남기기 위해 이렇게 백 년 동안 배를 끌고 있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안은숙

 

서울 출생 

교육학 석사 졸업

2015년 『실천문학』 시 등단 

201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2017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 문학 분야 선정작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가 

제1회 시산맥시문학상 수상

제7회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동주문학상 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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