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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워싱턴 문인협회> 노숙자
 
김은국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3/01/19 [17:56]
▲ 김은국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매일 출근길에 필라로 이어진 베시 로스 브릿지( Bessy Ross Bridge)를 건너간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델라웨어 강어귀를 어디에선가 만나는 가을의 파란 하늘이 필라 시티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 거기에 새들이 뜨개질되고, 다리 옆을 지나는 지하철은 활기찬 필라 아침을 덜컹거린다. 어떨 때는 회색 잿빛 구름이 도시까지 검은 그림자로 내려앉아 있을 때도 있다. 묵화처럼 검게 퍼져 가는 필라 도시, 또한 아름다워 흑백 사진의 어느 한 역사를 추억하게 하기도 한다.

 

 몇 분이 지났을까? 필라 시 안으로 들어오면 이 아름다움은 그저 한 장의 엽서에 찍혀진 사진이다. 오래되어 군데군데 터져 버린 벽 아래로 허름한 텐트들이 보행자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그런 텐트마저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텐트 사이 사이에서 몸에서 떨어져 나온 죽은 각질이 떼가 되어 묻은 담요 하나 깔고 땅이 품은 한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둘둘 말은 구겨진 휴지처럼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곤 한다. 거기에는 오늘도 내일도 먼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처럼 한 날만이 존재한다. 매 끼니만큼의 양만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곳에서는 그 정도의 생각만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아침마다 차들이 바쁘게 지나는 횡단 보도에 서 있는 노숙자의 빈손에 단 한 푼의 소망 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만큼 만이 그들의 인생 목표이다. 

 

 이 사람들을 얼마나 지나쳐 다녔을까? 나는 25년을 출퇴근하면서 이 사람들의 곁을 매일 스쳐 지나가고 있다. 마치 바람처럼, 비처럼, 때론 눈에 미끄러지듯, 나는 그들의 눈을 스쳐 지나가며 오늘도 차를 몰고 있다. 지나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참 게으르다는 생각을 늘 한다. 어쩌면 나보다 더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온종일 빈 통 하나 들고 서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들은 어쩌면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더운 여름 태양 아래서도 똑같은 장소에 서 있다. 추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구멍이 난 옷을 덮어쓰고 똑같은 장소에 서 있다. 게으른 것이 아닌 오히려 성실한 것인 줄도 모른다. 아프면 그리고 아픈 척하고 싶으면 얼마나 많은 직장인이 땡땡이를 치는가. 이분들에게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처럼 살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든지, 잘나가는 기업인이었다가 사업이 실패했든지, 개인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생의 끈을 놓고 좌절해 버렸는지 모른다. 밖으로 내던져진 사람들…밖이 가정인 사람들…낯선 사람들과 만의 접촉이 있는 사람들….

 

 그들 세상에는 희망, 소망, 사랑, 평안이란 단어가 없어졌을 것만 같다. 흙먼지가 섞인 탁한 공기 한 줌 들이쉬며 언제 머리를 감았는지 알 수 없는 엉킨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을 갈라진 손으로 빗질하는 이들이 사는 장소에는 냉소와 고립과 따돌림만이 존재한다. 이들이 태어났을 때, 부모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처럼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처럼 기쁘지 않았을까? 혹 머리가 꼬깔콘처럼 외계인을 닮게 태어났을지라도 그들 부모님은 나처럼 얼굴에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해산의 고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태아의 왕방울 같은 눈을 떠 올리며 잠시 평안을 느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몇 달 있으면 만날 희망을 꿈꾸었을 것이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리라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까지만 생각하고 싶다. 아내가 아이를 품었을 때마다 없던 희망의 에너지가 솟구쳤으니까…

 

 나는 카디자 윌리엄스 엄마는 최소한 이런 미소와 희망을 꿈꾸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14살의 미혼모로 차가운 쓰레기더미 속에서 카디자를 낳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어린 엄마였지만, 노숙하는 이 거리에서도 방끗 웃는 카디자를 보고 희망이라는 씨앗을 마음에 꼭 간직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희망은 꼭 절망이라는 곳에 심어져 뿌리를 하얗게 내린다. 사람들은 햇살이 집안보다 더 노출된 거리에 더 집중하여 비추어 주지만, 너무나 좌절되는 현실의 막다른 골목길이기에 이 빛나는 희망을 노숙하는 거리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쓰레기더미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침 뱉음을 받아 수치로 물든 골고다 언덕 같은 곳이다. 거부 받은 모든 것들은 상처투성이다. 회복되지 않은 상처는 곧 지독한 악취로 죽게 된다. 쓰레기 더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공동묘지다. 결코 살아날 희망이 없는 땅 밑 세계로 분류될 것들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카디자와 그 어린 엄마는 무엇을 이 쓰레기더미에서 주었을까? 구겨져 제대로 형체가 없는 연필 박스 안에서 혹시 몽당연필을 줍지 않았을까? 지저분한 노트북에 남아 있는 하얀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끔 요술처럼 바람결을 타고 날아든 신문 조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찢어진 신문지 경계에 멈춘 글자를 퍼즐처럼 맞추는 그녀의 호기심을 위해 태양까지 멈추어 밝은 시간을 연장해 주지 않았을까? 한 권의 책에 담긴 이성과 사상을 역사의 조명으로 그녀는 우주를 발견했으리라. 그리고 관찰과 사유하는 감각으로 공부의 지혜를 배웠으리라. 녹아버린 달콤한 아이스크림 포장에 기어 다니는 기호들…그램, 밀리그램, 퍼센트 등등에서 지구의 중력과 원심력을 계산해 냈을 것이다. 포화 지방과 당분 그리고 단백질의 무게를 달아 건강을 지켜나가는 의학을 이해했을 것이고, 과자 겉봉지에 채색된 빨강과 노란색에 떨어진 비 한 방울을 섞으면 주황색이 된다는 아름다운 예술을 통해 타자의 마음을 보살피는 감성을 성장의 그릇에 담아내었을 것이다.

 

 노숙자의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의 약자들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위험한 시선의 화살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인생의 철학과 역사의식을 튼튼히 세워나가며, 포기할 수 없는 바닥 근성과 정의의 확립을 위한 꿈이 생겼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자. “거리의 길바닥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거리는 그녀에게 생명이 꿈틀거리는 지식을 선사했고, 거리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공부이자, 학문의 밑거름이었다. 

 

 그녀는 노숙자가 이름이었다고 한다. 노숙자라는 이름은 구별이 없다.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을 더 고립시키는 보통명사일 뿐이다. 노숙자 이름으로 이 생애를 끝낸다는 것은 눈을 뜨고 사는 존재의 의미상실일뿐이다. 구체적인 이름이 없으면 의미와 개념은 없다. 구별할 수 있는 고유명사의 이름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존재의 독특성을 확인하려면…

 

 그녀의 이름은 노숙자가 아니라, 이젠 카디자 윌리엄스이다. 쓰레기더미에서 희망의 씨앗을 주었기 때문이다. 거리의 길바닥에서 지식의 터전을 닦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진리와 자유와 환원의 원리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워 주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와 일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희망은 날개 달린 것”에 보면 희망은 모진 바람이 불 때 더욱더 감미롭고, 참으로 매서운 폭풍만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이 감싸 준다고 했다. 희망은 반드시 절망이 쓰러져 있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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