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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논단> 김 군과 이 군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23/01/29 [19:53]
▲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울산광역매일

 가족들의 모임에서 내가 김(金) 군과 이(李) 군의 이야기를 마치자 딸은 아들에게 "너도 이(李) 군처럼 살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그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면 살아남기조차 어렵다고 걱정했다. 아들은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인 김 군과 이 군 또래였고, 딸은 아들과 띠동갑, 열두 살이 많다. 나이 차이가 커서 그런지 딸은 아들에게 늘 엄마처럼 행동했다.

 

 동해남부선 완행열차를 탔다. 열차가 출발하고 십 분쯤 지났을 때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내 수업을 듣는 김 군이었다. 화장실을 갔다가 혼자 앉아있는 나를 보았다며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기장에 살고, 열차로 통학한다며 부모님이 기장시장에서 대게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머니에서 가게 이름이 적힌 명함을 꺼내어 내밀었다. 붙임성이 좋은 그는 학교 이야기며, 동료 수강생 이야기, 다른 교수들 이야기며 많은 말을 했다. 기장역에서 그는 내렸다. 그가 내리면서 아버지의 가게에 꼭 한번 들려 달라고 말했다. 오시면 VIP로 모시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내 아들도 김 군처럼 붙임성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붙임성이 없는 것도 날 닮은 것을 어찌하겠나 싶기도 했다. 

 

 김 군과 만나고 일주일쯤 후 일요일이었다. 부산에 있는 예식장에서 친구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 일곱 명이 식사하러 갔다. 누군가가 약간 걸어서라도 근처 재래시장에 가면 아주 유명한 대구탕집이 있다며 기왕이면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런 유명한 집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일행은 전부 알고 있었다. 

 

 가게에 도착하자 주변의 한산함과 달리 그 가게는 만석이었다. 주인은 몇 명이냐고 묻고는 가게에 딸린 다락방밖에 없다며 그곳이라도 좋다면 들어오라고 했다. 일행은 천만다행이라며 다락으로 올라갔다. 다락은 한눈에 보아도 주인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쓰는 공부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앉으면서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책 한 권, 이번 학기에 내가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였다. 호기심에 저절로 책장에서 뺀 책에서 이 군의 이름을 발견했다.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유명한 식당의 아들이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니. 

 

 한 오 분쯤 흘렀을까. 쟁반에 컵과 물 주전자를 들고 다락 계단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 군이었다. 나는 이 군이 미안해할까 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쯤은 탁자에 컵을 놓고 주문을 받으려나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 군은 사라지고 없었다. 친구들도 오다가 바로 돌아 가버린, 별 희한한 일을 다 보았다는 듯이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은 나이 많은 아저씨였다. 이 군과 많이 닮았다. 아마 이 군의 아버지이지 싶다. 

 

 순간 스치는 생각들…, 나를 발견한 이 군은 그의 아버지에게 모진 원망만 퍼붓고는 신세를 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바빠도 돕지 않겠다고, 다른 곳에 공부방을 만들어 달라고, 식당을 하는 아버지가 창피하다고 했을 것이다. 내가 가족 모임에서 이야기한 김 군과 이 군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이 일 이후 이 군은 수업시간에 나와 눈도 맞추지 않았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수업 중에 에둘러 말했다. 경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서 최고의 실력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일본의 전통 중시와 가업 승계에 대하여 말했다. 동경대학 교수를 사직하고 아버지의 우동 가게를 이어받는 예도 있다. 우리도 그런 점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 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채점하면서 김 군과 이 군의 시험지를 꼼꼼하게 다시 읽었다. 둘과 만남이 자꾸 떠올라 채점에 공정성을 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나 남은 A 학점을 두고 고민했다. 어떤 편견도 두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열 번도 넘게 다짐한다. 장고 끝에 가족 모두가 소극적이라는 이 군을 A 학점으로 정했다.

 

 이 또한 나의 젊은 시절처럼, 아들의 지금처럼 행동한 이 군에게 연민이라는 편견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성숙한 효도 보다 미숙한 불효가 젊은이에게는 더 어울린다는 것이 나름의 나의 철학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풋사과의 떫은맛 또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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