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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려왕과 아들의 비극 그리고 와인
 
변연배 와인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3/05/29 [18:57]
▲ 변연배 와인 칼럼니스트     © 울산광역매일

 고려는 전쟁에 패했지만, 몽골의 부마국으로서 어느 정도 독자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다. 몽골은 보통 속전속결로 정복국을 제압했다. 하지만 고려는 참혹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30년 동안 저항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몽골이 완전히 복속하기엔 까다로운 상대였다. 9차례나 침공이 이어진 이유이다.

 

 고려가 마냥 전쟁으로 저항한 것만은 아니었다. 때때로 기만전술을 썼다. 몽골의 5차 침공 때는 거짓으로 항복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3차 침공 때는 고려 왕이 몽골에 입조(入朝, 조정의 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복속의 의미)하기로 약속하자 몽골군이 철수한다. 그러나 고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몽골의 독촉이 이어졌고, 고려는 다른 왕족을 왕자로 가장해 몽골로 보낸다. 충렬왕 이전에 고려인이 몽골제국 왕실에 가 있던 배경이다. 1239년 볼모로 몽골에 간 신안공 왕전(新安公 王佺)과 1241년(고종 28년) 영녕공 왕준(永寧公 王綧)이다. 이들은 와인이 일상화돼 있던 몽골 왕실에서 먼저 와인을 마셨을 것이다.

 

 영녕공 왕준과 관련해선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다.

 

 고려군의 중간 지휘관이던 홍복원(洪福源)은 몽골의 1차 침략 때인 1231년 몽골에 항복했다. 이후 몽골 침략 시 길잡이 노릇을 하는 등 3대에 걸쳐 고려에 큰 해를 끼친 반역자다. 고려군의 지휘관이자 의주 지방의 토호였던 그의 아버지 홍대순 역시 1218년 일찌감치 몽골에 투항했다.

 

 영녕공이 몽골에 왔을 때 홍복원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사이가 틀어져 홍복원은 영녕공에게 “집에서 기르던 개새끼가 주인을 무는구나!”라며 희대의 폭언을 날린다.

 

 당시 영녕공은 몽골의 황녀와 혼인한 상태였다. 이 말을 들은 영녕공의 부인은 분노한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남편을 정성껏 모시고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내 남편이 만약 개라면 어찌 사람이 개와 함께 살 수 있겠는가?”(朝夕恪勤, 無二心. 公若犬也, 安有人而與犬, 同處者乎).

 

 홍복원이 울며불며 빌고 영녕공에게 뇌물까지 주었으나, 영녕공의 부인은 바로 몽케 칸에게 고한다. 몽골 황실을 모욕한데 크게 노한 몽케 칸은 칙사를 보냈고, 가는 길에 홍복원을 만난 장사 수십명은 그를 말 그대로 밟아 죽였다(‘고려사’). 하지만 홍복원이 죽은 후에도 아들 홍다구(洪茶丘)는 권력을 유지했고, 그 원한으로 아버지보다 더 악랄하게 고려를 괴롭힌다.

 

 몽골 왕실과 혼인으로 맺어진 고려 충렬왕 시대에는 와인을 받기도 한다. 1285년(충렬왕 11년), 1296~1298년(충렬왕 21~24년), 1302년(충렬왕 28년), 1308년(충렬왕 34년) 2월 등 총 6번에 걸쳐 원 황제가 고려에 와인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와 ‘고려사 절요’에 있다. 와인에 대한 우리나라 역사서 최초의 기록이다. 모두 충렬왕 시대인 점이 특이하다. 충렬왕은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한 후 3년이나 원나라에 머물며 와인을 즐겨 마셨다.

 

 1285년 8월은 그해 7월 쿠빌라이 칸의 생일축하 사절로 대도에 간 고려 사신에게 답례로, 1296년 3월은 그해 1월3일 세자 왕원(王謜, 훗날 충선왕)과 계국대장공주와의 혼인 요청 시, 1297년 3월은 충렬왕이 신년 인사차 원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하사받았다.

 

 1294년 세조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성종 테무르가 즉위하자 원과 고려의 관계는 경색된다. 이어 1297년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방패막이던 부마의 지위마저 잃은 충렬왕은 급격히 입지가 약화되고, 세자 왕원과 심각한 불화가 생긴다. 1298년 1월 충렬왕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왕위를 왕원, 즉 충선왕에게 물려준다.

 

 그러나 충선왕이 즉위한지 7개월만인 그해 8월 원 성종은 보로우(孛魯兀, 패로올)을 보내 충선왕을 불러들인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8월18일) 열린 연회에서 보로우는 충선왕으로부터 국새를 직접 빼앗아 충렬왕에게 건네준다. 충선왕이 폐위된 것이다. 이는 충선왕의 급격한 개혁이 원나라의 비위를 거스른 데다, 그와 계국대장공주 간 불화때문이었다. 이어 19일 성종은 충렬왕이 국정을 총괄하도록 명을 내리고, 충렬왕은 다시 복위한다.

 

 그해 9월 원나라는 코코추 장군과 좌상 카산을 보내 충렬왕과 국사를 논의한다. 이때 성종은 이들 편으로 “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로 홀로 무료할 것이라 충렬왕에게 와인을 하사한다”는 교지와 함께 와인을 보낸다. 그해 제국대장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가 11세 나이로 사망한 것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1302년에는 충렬왕이 원나라에 갔다 귀국하는 길에, 1308년에는 원 황태자의 생일 축하를 위해 보낸 사신을 통해 와인을 하사받는다.

 

 충렬왕 복위 후 충선왕은 그대로 원나라에 머물렀고, 10년 후인 1308년 7월 충렬왕이 사망하자 8월에 귀국했다. 3개월을 고려에 머문 후 11월 원나라로 돌아간 그는 1313년 3월 충숙왕에게 왕위를 넘길 때까지 원나라에 머물면서 교지를 통해 원격으로 고려를 다스렸다.

 

 충렬왕은 충선왕과의 불화를 후회하며 죽기 전 아들을 보고 싶어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충선왕도 왕위 계승과 관련해 세자인 아들 왕감(王鑑)을 죽였다. 3대에 걸친 질긴 부자 간 갈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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