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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시가 숲에서 내게로왔다
 
김진복 수필가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3/09/26 [18:27]
▲ 김진복 수필가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20여 년 전 뇌출혈 발생 후, 사고 기능과 우측 몸은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었으나 발음이 약간 어눌하게 변하였다. 좌측은 후유증으로 마비되어 거동이 불편한 상태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3년이 지났다면서 “병원에 있으면 환자이고, 병원을 벗어나면 일반인이다.”라며 퇴원을 권유하였다. 

 

 처음에는 과연 내 몸이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그러다 약이야 퇴원해도 같고 물리치료야 주 1회 통원 치료받으니 별문제 없을 것 같아 퇴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또 병원 복도에서 하던 보행 연습은 지역 공원의 편백나무 숲 산책으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온다고 하니 여러 계획은 세웠지만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퇴원 후, 완만한 산책로를 활용하려고 공원 산자락 근처로 이사하였다. 그러나 종종 숲에서 걷기 운동을 하리라던 처음 다짐은 희미해져 갔다. 또,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니 주 1회의 재활치료로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나태해졌다. 50년 전 기억은 생생한데 불과 몇 초 전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니 치매에 걸리겠다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또, 낮에 8시간 이상 TV에 매달리며 지내다 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블로그를 개설하여 습작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12년의 뇌출혈 투병 생활을 글로 써서 올리고, 환우들과 보호자를 위해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다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고, 안으로 들어온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생활이 리듬을 찾기 시작하니 다시 살맛이 생겼다.

 

 또, 공원에 가게 되면서 그때마다 시를 거의 한 편씩 썼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틈틈이 공원에 가니 갖가지 꽃들이 산책로 주변에 함초롬히 피어 반겨 주었다. 하지만 시야장애로 그 아름다운 꽃들을 집중하여 볼 수가 없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서 확대해 보니 꽃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마다의 개성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산자락 어딘가에 심어진 후 누군가 날마다 돌보지 않아도, 쳐다보지 않아도 그렇게 살다 죽어도 아무 원망도 없이 그 자리에서 빛깔로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름 있는 꽃, 이름 없는 꽃 모두 숲에서는 평등하고 아름다운 존재일 뿐이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내 가치는 변함없다는 위로를 그 많은 이름 없는 꽃들로부터 받았다.

 

 특히 공원 호숫가 편백나무 숲에 앉아 있으면 땀구멍으로 맑은 공기가 솔솔 들어와 정말 상쾌했다. 맑아진 나에게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 풀 한 포기, 바람 소리가 슬며시 다가왔다. 시상(詩想)이 떠오르면 핸드폰에 바로바로 입력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졸필이지만 2011년에는 등단도 하게 되었다. 등단 후 5년 동안 쓴 창작시 370편 중 40편은 숲길에서 얻은 시재(詩材)로 쓴 것이다. 말 그대로 천연의 숲이 시가 되어 내게 오는 듯했다.

  

 그렇게 산책길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들이 떠오른다. 봄에는 겨우내 갈기갈기 터진 묵은 줄기를 산모의 배에, 그 줄기에서 새 가지가 돋아나 꽃이 피는 것을 새 생명을 낳는 산모의 산고(産苦)에 비유하여 “꽃이 피려면”이라는 시를 썼다. 또, 호숫가 편백나무 숲에 봄바람이 불면 눈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꽃은 바람 따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철 따라 피고 지듯 인생도 때가 되면 가야 한다는 “꽃은 피고 지고”를 썼다. 여름에는 거짓은 숨긴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호수는 거울이라”, “눈을 감는다고”를 썼다. 가을에는 푸른 나무들도 꽃 피고 새 우는 시절을 뒤로하고 낙엽 지는 것을 인생에 비유해 “낙엽과 인생”, “퍼득이는 억새들”, “떠나지 않으리라.”, 얄팍한 인간들의 행태를 가을이 되면 나뭇잎 색이 변하는 것에 비유해 “본색을 드러내다.”라는 시로 나타내었다. 겨울이 오면 시냇물도 흐름을 멈추고, 호흡을 멈추면 눈이 대지를 덮는다는 내용의 “겨울이 오면”을 썼다. 시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계절 따라 다른 옷을 입은 자연의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온 것처럼 느껴졌다.

 

 숲과 시를 만나기 전에는 나 자신부터 병에 대해 자조적이었다. 남들이 내 어눌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환자라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싸우는 줄로 오해할 정도로 큰 목소리로 화내며 따지기도 해 아내가 대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날 배려한다는 이유였다지만, 소외되는 듯한 국외자(局外者)의 기분을 종종 느꼈다. 사고로 몸은 장애를 입었지만, 마음은 전과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원을 찾으면서 환우들, 그 보호자들과 관심사를 얘기하고 소통이 잘되면서 속이 후련해지기 시작했다. 만날수록 서로 측은지심으로 배려하게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또, 사물을 긍정적으로 대하니 안색과 어눌한 발음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숲과 가까워질수록 정신은 맑아지고, 몸도 좋아졌으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글을 쓰면서 블로그에 꽃과 나무 사진을 올리다 보니 수시로 아내에게 사진 부탁을 하곤 한다. 가끔 귀찮아하기도 하였으나, 내 병세가 호전되어 가니 아내는 간병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나의 반쪽이 되어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하다. 내 시의 큰 뿌리는 숲에서 왔으나 그것을 시로 꽃피우게 지탱해 준 것은 아내였으니 말이다. 오늘도 비가 오려는지 삭신이 결리고 쑤시지만 운동화 끈 질끈 동여매고, 또 다른 시를 만나기 위해 편백나무 숲으로 나선다.

 


 

 

心泉 김진복 

 

약력:

*충남 서천군 출생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연수과정 1년 이수(1974.02)

*월간 한맥문학 시 부문 신인상 등단(2011.02)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산맥시회 회원

*군산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예철학회 회원

*서천문화원 회원

*한국장애인문학회 회원

 

문학상 수상:

*독도문예대전 입선(2014.10)

*통일문예 입선(2014.10)

*진도사랑 공모전 입선(2018.12)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공모전 선정(2015.07)

*장애인 인권문학상 입선(2014.01)

*장애인 유권자 연맹 일반부 대상(2016.11)

*서정문학상 본상(2018.11)

*공저: 70편

*시집:1집/반달은 울지 않는다(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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