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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눈송이 레시피
 
이어진 시인   기사입력  2024/01/08 [16:32]

우리는 먼 곳을 향해 날고 있는 눈송이의 이름을 불렀다

눈물이 육각형으로 매달려 있었다 여름의 감정은 눈송이로

흩어졌다

눈송이 안에서 각진 눈물방울 같은 냄새가 뿜어져 나올 때

공기의 눈동자에 가느다란 속눈썹을 붙이고 긴 여행을 떠나

고 싶었다 

오래전 구름의 엽서를 받은 후 아주 오랜 후였다

내가 가볍게 날아다니는 걸 눈치 챈 걸까

지붕이라면 내가 포근하게 덮어주는 걸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누군가 일곱 개의 사과와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동화책을 읽

었을지도 모르는 눈송이 안에서 객석은 극장의 화면 속을

폭설로 내리는 여름 풍경으로 앉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미래에서 온 눈송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으로 눈송이의 혓바닥 위에서 맛나게 스며드는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서글프고 날선 서로의 윤곽을 핥았다 

한 번쯤 눈송이에게서 편지를 받고 싶다 눈송이의 머릿속을

흘러 다니는 구름의 손가락은 흘러내리는 빙수, 나는 조금씩

사라지는 눈송이 안에서 정오의 시간을 음미하고 있다 

 

사각사각 눈송이가 스며드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전 내가 얼

음을 상상하던 그 눈빛 안에서 길고 긴 미로가 얽힌 육각형

의 눈송이 안에서

 

 

시집 『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 여우난골

 


 

 

▲ 이어진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세계, 눈송이 속에 구름들이 은거하는 세계, 여름의 호숫가에 앉아서 눈송이들이 팥빙수를 먹는 세계의 노래. 눈송이들은 전쟁의 실상을 알지만 관여할 수가 없군요. 무능력해서 기도밖에 할 수가 없는 눈송이들이에요. 프로이트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 욕망에 주목하지만, 들뢰즈는 전쟁기계와도 같은 욕망의 폭력에 대해 경고해요. 시는 현실과 상상 너머에서 고뇌하는 노래라고 할까요.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는 세계를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이어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문학박사) 20015년 《시인동네》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와 『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 연구서로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멜랑콜리의 정치성 연구」가 있다. 유투브 채널 <이어진의 문학의 향기>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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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1/08 [16:32]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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