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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내 머릿속 명절
 
김화연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4/01/30 [16:48]

▲ 김화연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설 명절인 오늘 신문에서는 최악 북극한파로 날씨가 영하 15도를 넘어간다고 노약자들은 밖에 나가는 것을 삼가라는 문자가 몇 번씩 울리고 밖을 잠깐 나갔다 온 남편은 처음으로 귀가 얼얼하여 걸어오는 내내 차를 가지고 나올 걸 후회했다고 한다.

 

 여행 간 친구는 코로나로 인하여 가족 모임으로 택했던 제주도에 강풍과 대설로 밖을 나가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려고 한다는 긴급문자가 떴다. 

 

 오늘은 단출한 우리 식구들이 모이는 날. 부지런하게 끓였던 LA갈비는 서울서 분당으로 오는 길이 한 시간 반이 걸려서 기다리는 시간만큼 뼈가 떨어지고 묵처럼 부드러워졌다. 국자로 뜨니 뼈는 뼈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따로 놀고 있다. 뜨겁게 먹이려 했던 마음이 묵사발이 된 즈음에 도착한 딸네 식구들.

 

 밥은 차려지고 예의를 차리는 식사는 흔히 말하는 올해 건강과 좋은 일만 가득하라는 덕담과 함께 각자 좋아하는 반찬으로 손이 가는 젓가락 소리만 설 식탁을 메우고 있다.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은 이틀간의 내 정성과 보고픔이 가득한 노력이다. 음식이 짤까 몇 번의 심사숙고로 만들어진 잡채, 호박전과 버섯전, 갈비찜, 식사가 끝난 후 손자들은 각방으로 들어가 누워있더니 쪽잠을 자고 명절에도 학원 수업이 있다면서 3시간 만에 도곡동으로 차를 돌렸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손님처럼 떠나버린 자식들에게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오는 시간만큼만 정(情)을 주고 떠난 명절이다. 가까워서 쉽게 오지만 가기에도 쉬워서 잠을 자지 않고 떠난다. 남은 반찬을 싸주고 잘 가라는 말로 올해의 명절은 끝이 났다. 차례를 지내고 한복을 입고 친척 집으로 달려가서 세뱃돈 받는 즐거움이 엊그제같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듯 떠나가는 뒷모습이 바쁘다.

 

 

 눈이 눈을 부르는 동산리 마을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눈은 하얗게 내리고

 이제는 늙은 감나무 밑에

 여전히 높은 꼭대기 맛으로

 얼어 있는 홍시 몇 개

 이른 아침 누군가 서성 거렸을까

 어린 발자국 한 컬레

 

 

 이런 날이면 내 고향 순창이 생각난다.

 

 이곳도 한번 눈이 오면 내 키만큼 온다. 살얼음 끼고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겨울 다왔다. 눈이 하얗게 내린 빈 들판은 어디가 길인지 집인지 알 수가 없고 삼월이 지나야 들녘이 보이고 길이 보인다. 느리고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본딧말을 쓰는, 말도 느린 전라북도. 방학마다 등으로 밀며 짧은 유배를 보냈던 부모님, 자식을 보내면 한 달 밥걱정이 없어서였을까. 구부러진 이차 선 길은 돌멩이가 가득하여 완행버스는 아랫배 쓴 물마저 다 넘기고 위가 텅 비워야만 보이는 할머니 집이었다. 느리고 느린 완행버스에 눈이 보름달처럼 커지고 눈물이 글썽거리고 배가 홀쭉해지면 보이는 700년을 산 동산리 입구 느티나무 정자.

 

 기동댁 부엌에 걸린 검은 솥단지에서는 팥국수가 끓고 안방 아랫목은 펄펄 끓어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한다. 얼어붙은 엄지발가락 양말에는 뜸을 들이는 밥 냄새처럼 김이 모락모락 날 때쯤 가지고 온 팥죽에는 “오냐 내 새끼 왔는가?” 구수한 말이 어깨 두드리며 입에서 미소가 펴졌다. 비로소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무료할 때쯤 오빠는 올가미나 덫으로 참새사냥을 하여 불쏘시개 짚으로 불을 피워 잔가지들을 모아 불에 구워서 주기도 했다. 

 

 큰집, 작은집 사촌들이 모이면 이십여 명의 기동부대가 일렬로 서서 나이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고 순종하듯 대장을 따랐다. 친척들 집에 가서 세배드리고 복채와 덕담으로 홀쭉한 배가 볼록하니 배부른 참새들처럼 시끄러웠다. 명절에 사준 옷은 삼 년이나 지나야 제 몸에 맞아 손도 발도 보이지 않은 큼직한 옷을 사주고 배부른 듯 웃던 부모님 생각이 난다.

 

 

 곶감처럼 쭈그러진 할머니 뱃살을 잡고

 입 투정을 하면 

 뒤뜰 장독에서 꺼내주시던 홍시 한 개 

 군불이 남아있는 아랫목에서 

 이불 두르고 한 잎 베어 물면

 살얼음 어는 소리

 

 

 바로 이 맛 같은 명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시끄럽고 북적거리던 명절은 내 머릿속의 명절이다. 지금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설거지가 끝나기도 전해 엉거주춤 일어나는 떠나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완행버스의 여유로움을 생각한다. 느리게 오는 시간만큼 느리게 달리는 시간 속에 소처럼 되씹어보는 고향의 정취들 그리고 구수한 사투리의 정겨움 가득한 명절.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빨리 가면 삼십 분이면 닿을 가까운 집이 옛고향으로 가는 완행버스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베란다에서 차 소리 멀어져가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데...

 


 

 

전북 순창출생

2015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내일도나하고놀래,  단추들의 체온 

전자 시집: 소낙비

2023년 최충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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