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하표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자욱한 안개로 덮인 도심의 거리, 한산한 거리는 겨울로 가는 듯, 뽀얀 안개의 거리, 구기터널 긴 능선을 지나 산길인 탕춘대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바위를 뚫고 졸졸 흐르는 석간수에 메마른 인심을 적셔 봅니다. 단내의 물향기가 품어져 나와 막혔던 가슴 속을 탁 트이게 합니다. 산 위로 오르며 소나무 가지 위에 맺혀져 있는 물방울들에게 눈이 갑니다. 둥글고 싱그런 모습들, 모가 난 곳이 보이지 않네요, 아마 깎이고 더러는 문드러져 둥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 겠지요.

 雲霧 흐르니 사방은 혼미하여 5m 전방이 흐릿해 잘 보이지 않네요. 이런 운무 속에서 사진 찍으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될 것 같네요. 가파른 바위길에 올라서니 인적 없던 길 위에서 무언가 노리고 있던 청설모가 갑자기 후다닥 거리며 산 위로 도망을 칩니다. 저도 놀랐겠지요 당황스러웠던 나, 카메라 들이대니 나무꼭대기 위로 부지런히 내뺍니다.

 분명 앞은 흐린데 물개바위가 나왔습니다 영락없는 물개를 닮았네요, 비봉능선을 지나 깔딱거리며 마지막 깔딱고개를 오릅니다 청수동암문을 향해 오르는 길, 길 위에 누가 비닐봉지 속에 정갈히 귤 6개를 담아놓고 갔습니다. 다음에 오는 이를 위한, 속 깊은 마음의 배려, 그 아름다운 마

음씨에 큰 감동 받았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는 계단 갑자기 시야가 환해 졌습니다. “만세! 상고대야~” 어지간해서 잘 볼 수 없는 상고대, 소나무 사이 사이에, 돌담 위, 여기저기 화려한 모습으로 만발히 피었습니다. 작년 겨울 운악산 정상 오를 때, 온통 산 전체가 상고대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었던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릅니다.   

 청수동암문 앞에 섰습니다. 높이674m,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얀 백설의 세계, 동암문 앞 뒤 세계가 이렇게 다르다니... 눈으로 덮여진 세계, 이젠 눈길을 걷습니다. 팥배나무 상수리나무에도 조용히 미소짓고 소나무 위에도 위엄있게 내려앉은 눈꽃의 세계, 겨울 숲 내리기 전에 상수리 숲에서 난, 그대를 만나야만 합니다. 참나무 자작나무 떨어져 내린 마른 잎사귀 밟으며 한때 젊음으로 숲 이루고 저마다 깊어졌던 그리운 것들, 밑바닥까지 미쳐 가 닿지 못했던 그 빛의 마음들을 겨울 숲 내리기 전에 만나야만 합니다.  

 대남문을 지납니다. 박새들이 한창 날아듭니다 제 세상 만난 양 활기차게 이리저리 날아들고 사진 찍을라치면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땅 위 내려앉아 종종거리고 이리저리 날아드는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신나는 세상인가 봅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제 한 세상 잘 꾸려나가겠지요, 대성문을 지나고 마지막 코스인 국민대가 있는 북한산 탐방로로 들어섰습니다 어느덧 하루 해가 기울기 시작해 숲 속 고요만이 내려앉았습니다. 서걱서걱 떨어져 내린 낙엽들을 밟으며 산길을 돌아 내려옵니다.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지요. 늘 비어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꼭 움켜쥐었던 손을 내려놓는답니다. 이제 우리는, 나에게, 너에게, 나무에게, 숲에게 바람에게 그리고 꽃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해야하리, 그 평화 속에는 하이얀 고요의 빛만 남아 기나긴 어둠을 밝히리... 꽃은 지고 낙엽만 쌓여가지만 겨울 숲에 들기 전, 그리움 안고 새로운 기대로 지금은 우리 그저 침묵으로만 북악과 북한산을 바라보아야 할 때.

2008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2010년: 서울 마포고교 정년퇴임 

2011년∼2020년 숲 해설가로 활동 

2017년: 시집 <한 우주를 피우다> 

2021년: 시집 <통점에서 꽃이 핀다>

現: 詩로 여는 세상 同人, 시산맥 특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