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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겹
 
한승희 시인   기사입력  2024/02/13 [17:15]

몸에 난 숨구멍을 다 열고 

항아리는 숨을 쉬었다  

 

항아리 속엔 어둠이 제 살을 늘리고 있었다

 

귀퉁이가 깨진 뚜껑을 열자 

양파가 제 몸의 겹을 허물며 싹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늘이 무성한 항아리 속에서 산란의 길을 찾아 어둠을 줄이며 

양파는 꽃이 피는 방향으로 눈을 두고 

뿌리로 땅의 길을 더듬어 내고 있었다      

 

빛이 모이는 곳으로 몸을 트느라 

벗겨낼수록 뽀얗게 영글었던 겹겹의 몸은 한 겹 한 겹씩 무너졌다

뿌리는 작아지고  

몸은 허물어졌다

 

벗겨낼수록 뽀얗게 속살이 오르던 스무 살의 나는 집을 떠나며 

세상에 떠도는 자신감을 믿기로 했었다 

무모한 나를 지키기 위해 빛이 드는 방향으로 몸을 틀며 

생의 눈부신 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에 남아 있는 눈부신 일이란 꽃을 피우는 일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 잎이 자라지 않는 몸에 나는,

씨앗을 심었다 

 

내 몸의 겹을 허물고 나온 

내 아이의 스무 살이 몸을 틀고 있다

눈부시게 눈이 부시게 

 


 

 

▲ 한승희 시인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자아는 슬픔에 머물지 않고 양파가 제 몸의 겹을 허물어 싹을 밀어 올리듯 "몸에 난 숨구멍을 다 열고" 숨을 쉬며, 빛이 있는 쪽으로 "눈부시게 눈이 부시게" 내면의 몸을 틀고 있다. 또한 슬픔에서 빠져나오려는 기도가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스무 살의 나이에 집을 떠나며, "세상에 떠도는 자신감을 믿기로 했"고, 무모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빛이 드는 방향으로 몸을 틀며/ 생의 눈부신 순간을 기다"리는 과거가 있었다. 볕에 잎이 자라지 않으면 "씨앗을 심"은 적이 있다. 그런 두꺼운 겹으로 지금 살고 있다. 

 

 

한승희

 

충남 공주 출생                     

경기 광주 문인협회 10대 지부장 역임

광주문인협회 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차령문학 동인

계간 『웹진 시산맥』 편집스텝

시집 『아주, 가끔은 꽃의 이름으로 걸었다』(2024, 시산맥사)     

공저 『차령문학』 『흙』 『광주문학』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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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2/13 [17:15]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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