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낮은 간판들
아직도 양복점이 있는 도시였다
어린 날, 집에 출입하던 삼촌은
눈썹 짙은 젊은 사내였다
지금은 일흔이 훨씬 넘었을 그
목포 어디가 고향이라고,
남동생 없는 엄마에게 누님이라 부르며
하, 다정도 했는데,
한 손에 흰 초크를 들고 엎드려
지금도 가위질을 하고 있을까,
옛날처럼 빨간 에나멜 구두 한 켤레 사다
내 머리맡에 두고 갈 수 있을까,
이 낯선 길모퉁이에서
어쩌다 부딪칠 수도 있을 것 같은,
향기 고운 산국 한 다발을 건네며
허리 숙이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늦은 밤,
먼 그대, 담벼락에 서서 손을 흔든다
수줍고 색 바랜 웃음
뛰어 내려가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손 뻗으면 그 시절에 가닿을 듯,
돌아오는 내내 옆자리가 그득했다
가고 없는 어머니
가고 없을 그와 나,
이 도시가 풀어놓은 잔향이
어두운 차창 유리에 되비친다
남쪽바다 하룻밤
별빛처럼 흔들리는
<시작노트>
지난 늦가을 하루, 해남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목포로 갔다. 창밖에는 누런 햇살이 무릎이 빠질 만큼 출렁거렸다. 추수를 마친 남도의 들판, 참새나 허수아비 자리에 맑은 가을바람과 들꽃이 지천이었다. 시드니에서 늘 그리던 시골 풍경 아닌가, 버스에 실려 건들건들 가 보는 즐거움이 얼마만인지.
다섯 살 때 기억과 맞닥뜨리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목포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유달산 근처를, 목포 역 근처를 다니다가 눈썹 짙은 삼촌의 그림자를 오롯이 떠올린 것이다. 다시 해남 숙소로 돌아오는 가을밤은 그 덕분에 쓸쓸하지 않았다.
어둔 차창유리에 비친 오십여 년 전 기억, 그때가 그리 깊게 박혀 있을 줄이야, 하얗게 서리 내린 엄마에게 고조곤히 들려주고 싶다. 눈가를 훔치는, 젊었을 적 엄마의 시간을.
윤희경
2015년 『미네르바』 신인상 등단.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 전자시집 『빨간 일기예보』, 2022년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제10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수상
kyun78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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