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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조그만 돌멩이가 다리를 놓는다
 
이용희 시인   기사입력  2024/02/18 [16:34]

▲ 이용희 시인  © 울산광역매일

 너는 누구냐?

 

 어느 시인의 시에서 자신에게 묻는 문장이다. 

 

 오늘 문득 이 한 문장이 내게 돌아 온 화살처럼 꽂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제 눈은 흐려지고 마음도 옹졸해져서 내다 볼 여유가 없어진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스스로를 안다고 대답 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스스로를 돌아본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나는 조그마하다. 키도 작고 마음도 작고 생각도 작다. 모든 이에게 필요한 측은지심도 작고 누구인가를 이해하고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은 더 없이 작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엄마의 막내딸이다. 한국전쟁 피난길에서 돌아와 정착한 어느 방앗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께서 그 방앗간 일을 하셨고 방앗간의 한 쪽에 있던 방에서 태어난 나는 ‘방앗간 아이’라는 첫 이름을 얻었다. 

 

 음력의 칠월은 얼마나 신선했을까? 그 새벽에 나의 울음은 언니들을 깨웠고 십 여 살이 위인 언니 둘은 부엉이 우는 개울가에 나가 산후빨래를 해다 놓은 다음 미역국을 끓여 놓고 학교를 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언니들에게 잘 해 드려야지 마음뿐이고 부족한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부모님께서 기다려주시지 않은 것처럼 언니들도 먼저 훌쩍 가 버리는 날이 있을텐데 나는 아직도 철이 들지 못한다.

 

 조그마한 나는 언니 오빠들 틈에서 꾀가 났는지 어릴 때부터 영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웃집의 결혼식에서 화동이 되기도 했고 집 앞의 학교로 부임을 한 스무 살이나 위인 큰 오빠를 따라 다니다가 여섯 살에 일학년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아이는 맨 앞에 서고 맨 앞자리에 앉는 꼬맹이로 살았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 기억은 없는데 친구의 얼굴에 손톱자리를 낼 정도로 싸움에도 지지 않았다. 조금은 모자란다고 느끼는 이웃집의 덩치가 큰 아이를 졸병처럼 부리고 다니며 개구리를 잡게 하고 새알을 꺼내도록 명령했던 나는 누가 보아도 조그만 잔다르크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키가 작은 것처럼 마음도 좁아 누구를 이해하고 건너다보고 할 틈이 없었나보다. 친구들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만 사귀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 훌쩍 뛰어 나와 본 적이 없다. 

 

 장래 여판사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어머니의 꿈은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작은 발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고 가장 평범한 전문인이 되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가 나의 청춘이었을 테지만 그 청춘마저도 가장 가까운 들보에 가려져 먼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동경해 본적조차 없다.

 

 누구나가 지나는 일상처럼 아주 평범하게 그리고 평안하게 나의 하루하루는 지나가고 지금의 나는 누구라고 대답할 특별한 단어를 고를 수가 없다.

 

 나타낼 그 무엇도 보여 질 그 어느 것도 그려지지 않는 존재로서 수많은 군중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떠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본다.

 

 여고 시절에 백일장에서 상을 탔던 나의 시 제목처럼 ‘행렬’이라는 단어에 밀려 그저 말없이 발을 옮기고 저항 없이 따라가는 오늘이다. 그 행렬이 그다지 아름답거나 참혹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따라만 가면 하루하루가 다행스럽게만 느껴지는 요즈음인데 왜 나는 나를 찾게 된 것일까?

 

 조그만 소니 카메라 하나와 폰의 메모장 하나가 나의 하루를 장식하게 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지도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작은 어깨에 짊어질 무거운 짐이 없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워 순간순간을 날아본다. 

 

 수필을 쓰다가 시로 옮겨 앉고, 동화를 꾸며 놓고 시조의 운율을 고른다. 사진을 찍어 놓고 배열을 하며 사진동화를 꾸미는 시간들이다. 산을 뒤지며 나물을 모아다가 풀어놓고 앉아 고르듯 나는 오늘도 스치는 정서들을 골라 담는다. 시의 그릇에 한 편 또 시조의 그릇에 한 편 이렇게 고르고 담아내다 보니 남이 보면 어지러운 작가가 되었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사진과 문장을 엮는 디카 시도 이제는 한 장르가 되어 나의 프로필을 채워서 창작의 수면은 더욱 더 깊어만 간다. 허우적거리며 날숨을 쉬고 나니 하늘에 떠가는 구름은 나에게 손짓을 한다. 서녘 하늘로 떠가는 초승달도 나를 부른다. 어머니 그리워 눈물을 흘릴 사이도 없이 나는 곧 어머니 곁에 누울 텐데 그 날 어머니 앞에 부끄럽지 않은 나를 준비해야한다.

 

 따듯한 이불 한 장이나 포근한 외투 한 장으로, 아니면 가슴이 터질 듯 기쁜 친구 한 번 되어 보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그렇지만 애지중지 키우는 나의 모든 작품들을 잘 키우면 ‘사진 찍는 글쟁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는 않겠지 스스로를 토닥인다.

 

 동행인 중에 나 때문에 돌아서고 비켜가고 눈을 감는 사람들만 없다면 나는 이 시작도 끝도 모르는 행렬 속에서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함께 가는 군중 속에서 가만가만 줄 맞추고 속도 맞추는 내가 진정 나 아닐까 대답해본다.

 

 너는 누구니? 묻는다면 나는 어머니의 딸, 내 딸의 어머니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어나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로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보인다.

 

 


  

 

2012년 월간 수필문학 천료

2023년 강원아동문학상 수상

저서: 사진 수필집 ‘두 번 울던 날’ 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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