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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행복의 조건
 
유안나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4/02/20 [16:21]

▲ 유안나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행복한 삶에는 어떤 조건이 있을까? 철학자 칸트는 행복한 삶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째 보람찬 일을 발견했을 때, 둘째 사랑할 대상을 찾았을 때, 셋째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찾았을 때이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소망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라고 했다. ‘행복’ 참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말이다. 행복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그중 자아실현이 있다. 모자람을 채우려 노력하는 과정 중 하나가 만학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꿈꾸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또 플라톤은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에서 인간은 가지고 싶은 것을 조금 모자라게 가지라고 했다. 부족하면 겸손하게 되고 또 채워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202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김정자 할머니가 숙명여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글을 모르는 게 평생의 한으로 여기며 살아오다 어떤 계기로 한글을 배우게 되고 내쳐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평생학교에 다니며 한글부터 중 고등학교 과정까지 배움의 열망을 채워나간 만학도다. 흔한 일이 아니고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TV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에까지 출연하면서 유명하게 되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만학’ 사실 뒤늦게 공부한다는 말조차 어폐가 있는 듯하다. 공부에는 늦을 때가 없을뿐더러 한 번 공부하고 끝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계속해서 공부를 거듭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여건이 가능하다면야 정규교육의 길을 이어가면 좋겠지만 때를 놓쳤거나 또 그럴 형편이 안 된다 해도, 찾아보면 만학의 길은 생각보다 넓고 시스템이 무척 잘 되어있다. 방송통신 교육과정이라든가 사이버 교육과정 등 찾아보면 길은 많다. 김정자 할머니는 한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김 할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나이가 79세였다고 하니 누가 늦어서 공부를 못 하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막연히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절실히 원하면 기회는 올 것이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나 또한 재작년에야 사이버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부분 젊은 층이지만 늦은 나이에 나처럼 공부하는 학우들도 꽤 있었다. 그중에는 경찰관, 교사, 회사원, 아이티 업종 프로그래머 등, 많은 학우들이 있었고 사이버 수업이다 보니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분들도 시간의 차이로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온라인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였고 나이 지긋하신 신부님도 계셨다. 문학을 공부해서, 특히 우리나라 종교 역사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싶고, 동화를 공부해 어린이들과 친해지고 싶다고 하셨다. ‘사제’라 하면 왠지 근엄하고 어렵게만 생각되는데 함께 공부하며 친근감이 가고 신선한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 쉽지 않았다. 내 경우 살림도 해야 하고 가족 행사라든가 사회생활 등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온라인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들어야 하고 세미나에 출석해야 하고 리포트 제출하고 중간고사에 기말고사에 필수인 전공 시험 준비도 해야 했고, 졸업 필수인 영어 시험과 졸업 논문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 덕에 영어 소설을 번역본을 참고하여 원서를 몇 번씩 읽을 때 어려웠지만 행복했다.

 

 글을 쓰면서 문학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기에, 늦게나마 용기를 내어 대학원에 입학했고, 어떻게 따라가나 걱정도 되었으나 라캉의 철학이나 프로이트의 심리분석 등 정신분석이나, 뇌 과학까지 섭렵할 때 새로운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에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인 메타버스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미래 사회를 들여다볼 때 참으로 흥미로웠다. 

 

 무엇을 해봐도 공부하는 것만큼 재미있고 충만한 행복은 없다. 김정자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나하나 아는 게 눈을 떴으니까, 모든 것이 다 즐겁고 좋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굽은 등에 배낭을 메고 왕복 4시간의 통학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다녀 수능을 거쳐 당당히 대학에 합격하지 않으셨는가? 힘들었지만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꼭 무엇이 되고 어떤 결과를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 부족하면 채우고 싶어지고 하고 싶은 걸 하면 행복하다. 그것이 공부라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창과 졸업

2012년 애지로 등단 

2014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 『당신의 루우움』 

시집 :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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