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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구부정해지는 둥구나무
 
심재숙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4/02/28 [16:46]

▲ 심재숙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식탁을 사이에 두고 모녀가 마주 앉아 떡을 먹는다. 식탁 위에는 인절미와 보리떡이 놓였다. 노란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를 느릿느릿 입으로 가져가는 노모의 손길을 따라 딸의 시선이 움직인다. 오물오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시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어서 물컵에 물을 따라 노모 곁에 가만가만 놓는다. 딸의 미소는 노모의 입에 머문다. 그에 노모는 인절미를 삼키면서 콩고물이 참 고소하고 맛있다며 딸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면서 물을 마신다. 이번에는 노모의 시선이 보리떡으로 간다. 예전에 먹던 보리떡 향기가 그대로라고 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푸짐한 이야기보따리를 꺼낸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뵈러 간다.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허리와 등이 굽고 다리에도 힘이 없어 거동이 자유롭질 못하다.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해바라기하러 바깥 마루에 나오는 정도만 가능하다. 햇볕 좋은 날에는 뜰앞에 나와 조금 걷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는 데 어머니의 음성이 활기차고 기분이 좋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니는 하루에 세 번 늘 식후에 약을 복용해야 한다. 약을 드신 후에는 입이 건조해서 말을 할 때 불편을 느끼실 때가 많다. 가끔 통화를 할 때도 입이 말라서 말소리가 좀 힘들게 느껴질 때는 물을 한 모금 마시라고 이야기를 한다. 잠시라도 말벗이 되어 드리려고 통화를 하면서 날씨 이야기도 하고 음식은 무엇을 드셨고 맛은 어땠는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기다린다. 어머니의 대답이 끝나면 조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또 질문을 한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 TV를 보거나 가끔 밖에 나가 바람을 쐬는 것 외에 특별한 일이 거의 없는 일상이지만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역으로 어머니가 나에게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기도 하고 밥은 먹었느냐고 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머니가 딸인 나에게 질문을 할 때면 내 마음은 어느새 젊었을 적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다. 어머니는 연세가 드시면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부쩍 기운 없는 모습에 말수가 줄었다. 겨우 묻는 말에 짧게 대답을 하실 때가 많다. 그러다가 가끔 어머니가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를 꺼내실 때는 마음이 놓이기도 하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다.  

 

 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입구에 마을을 지켜주는 둥구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품고 있었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훤히 알고 있었다. 언제나 외출에서 돌아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둥구나무가 편안하게 맞아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울러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외치면 걸어 다니는 둥구나무인 어머니가 온 가족을 품어주었다. 그렇게 인자하고 넓고 푸르던 둥구나무가 이제는 몸이 뒤틀리고 휘어져 구부정한 둥구나무가 된 것이다. 거기다가 인자하고 자상하던 둥구나무가 귀도 어두워지면서 점점 힘겨운 모습이다.

 

 2년 전쯤에는 어머니가 병원에 장시간 입원을 하게 되면서 거동이 어려워 거의 누워만 계셨던 적이 있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온천은 커녕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천에 모시고 갈 수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얼마 전에도 온천엘 다녀왔다. 온천에 갈 때는 되도록 사람들이 적은 평일에 시간을 내서 다녀온다. 어머니의 몸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축해야 해서 휴일을 피해 한가한 평일에 가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마음이 편안하도록 나름대로 정한 나만의 규칙인 셈이다. 거기다가 하나를 더 보태자면 온천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다. 온천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나는 항상 좀 더 먼 길을 선택한다. 이유는 어머니가 어릴 때 자라던 고향을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 길을 지날 때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에 가장 행복한 여정이다. 어머니는 어릴 적, 그러니까 어머니가 초등학교 때 다니던 길을 이야기하면서 얼굴이 환해진다. 여름 장마철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자 물이 불어서 길을 건널 수 없었을 때 학교 선생님이 업어서 건널 수 있었던 기억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모들과 삼촌이랑 어울려 지내던 산과 들이 있는 마을을 가리키며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도 했다. 그때는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며 지금처럼 반듯한 집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기억을 살려 두리번두리번 손가락으로 위치를 설명하며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온천 가는 길이 풍성해지곤 했다. 

 

 모녀가 때를 민다. 거울 앞에 나란히 앉아 때를 민다. 등이 굽고 다리가 휘어 앙상한 어머니는 굵은 마디의 거친 손을 움직여 부지런히 몸을 씻고 머리를 감는다. 따뜻한 온탕에 들어갈 참이다. 곁에 앉은 딸은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곁에 놓아주고 챙겨준다. 머리 감는 것까지 마치게 되면 모녀는 천천히 자리를 옮겨 조심스럽게 온탕 안으로 들어간다. 표정이 환해진 노모의 얼굴에서는 편안한 기색이 돌고 시원하다는 말이 연거푸 나온다. 모녀는 탕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충북 괴산 출생

2003년 시인으로 등단(문예연구)

뒷목문학회 회원

시산맥시회 회원

시집 '볕 좋은 날' 외 다수

산문집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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