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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육지의 돌고래들
 
민은숙 시인   기사입력  2024/03/04 [16:18]

▲ 민은숙 시인  © 울산광역매일

 과거를 회상해보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염세 곁에서 얼쩡거리곤 했다. 친구들이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에도 화사한 볼을 실룩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할 때 탄생에서부터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고찰로 카오스에 빠져 있었다. 잠자리에 들면 그것을 떨치기 위해 환상의 나래를 펼쳤으나 일쑤 흐지부지 끝났다.

 

 부정의 그늘이 불현듯 가슴에 드리울 때면 빠르게 떨쳐버릴 수 있는 저항력이 나름 생겼지만, 시절의 나는 미숙하여 그 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타파하고 싶은 현실의 굴레를 걷어낼 수 없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속이 시끄러웠던 것 같다. 어른들과 친구들은 감쪽같이 몰랐다. 그저 말이 없고 수줍은 소녀로 내성적이라고 했다.

 

 글은 표면에서 볼 수 없는 내 안에 티겁지는 나도 모르게 들뜨게 한다. 담임의 심부름으로 교실에 들어간 나를 굳이 옆자리에 앉힌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 내 손을 꼭 잡더니 왜 그렇게 삶을 진지하게 사느냐고 한다. 십 대는 십 대답게 소녀는 소녀답게 어리광도 부리고 까탈스럽게 살라는 거다. 부지불식간에 엉뚱한 충고 아닌 조언을 들은 나는 황당했지만, 순순하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내 글을 읽으신 거였다. 선생님은 등을 쓸어내리며 꼭 그리해야 한다며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었다. 

 

 맥이란 사전적으로 기운이나 힘이란 뜻으로 셀수록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굉장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또 다른 명사적 의미로는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이다. 거미는 거미줄로, 나무는 잎맥으로, 사람은 인맥으로 관계란 망을 확장하려고 한다. 이에 사회적 관계망인 밴드, 별 그램, 얼굴 책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디지털은 없던 시절 나에게는 아날로그 맥이 있었다.

 

 등 뒤로 꼬불꼬불한 긴 머리와 붉은 연지, 원색을 매치한 눈에 뜨이는 의상으로 기억하는 음악 선생님은 각이 잡힌 여성스러운 이름을 소유했다. 음악보다는 패션 디자이너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분은 특이하게도 전교생을 대상으로 반 대항 합창대회를 해마다 개최하셨는데, 열성적으로 응원과 격려와 포상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합창 연습에 매진하면서 음악에 소질이 뛰어난 여학생이 꽤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영향력이란 것은 처음부터 휘몰아칠 수도 있지만 잔잔하게 시작해서 하울링으로 울려 퍼질 수도 있다. 지휘를 맡은 반장인 M은 합창을 제대로 아는 애였고, 반주를 맡은 K는 그 당시에 베토벤 곡을 거의 다 칠 수 있던 아이였으며, 내 짝인 S는 줄리어드 음대를 비올라 연주 실력으로 입학했다는 후문을 나중에 들었다. 사실 나는 피아노 한 번 구경 못한 촌뜨기였는데 말이다. 문화 충격을 맞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로 인해 얻은 게 훨씬 많았다. 음악에 눈떠 팝에 한동안 빠졌었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시작한 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배어난 문화의 향기에 빨려 문화의 변방에 살던 내가 문화예술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을. 

 

 어떤 동물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종을 돕기도 한다. 돌고래는 바다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해변으로 밀려온 길잡이 고래들을 바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이끌어 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상어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구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게다가 괴팍한 성격으로 알려진 하마 또한 얼룩말이나 누의 새끼 같은 어린 초식 동물들이 강을 건널 수 있게 강둑으로 밀어 올려 준다고 한다. 이타심은 인간만이 갖은 특성이라고 생각했으나 동물도 감정과 행동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첫 시집을 내고 나서 감사한 것이 참 많아졌다. 최소한의 주위 사람들에게만 알렸다. 시문학회 문인 선생님들에게 드릴 시집을 준비해서 가져갔던 날 하필이면 장날이었다. 유명한 시인이 특강 차 왔다. 낯부끄러워 열지도 못한 가방을 그대로 가져왔다. 노력이 아닌 운이란 것에 워낙 거리가 멀었기에 로또 한 장을 사지 않는 나다. 사행심엔 한눈팔지를 말자 스스로 다독였다. 뜻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 시집을 알리고, 구매하고, 도서관에 비치해 주고 있다. 대학교에서는 지도교수였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의 시를 돌아가며 낭독했단다. 생면부지의 독자가 내 시집을 필사하고 있단다. 

 

 날아가는 휘황한 새들을 감탄하며 바라본 적이 있다. 그 화려한 털이며 비상하는 추진력을 단 날개를. 날갯짓이 화려하기까지 수없이 부딪고 부리도 깨뜨린 그들만의 그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부러워 나도 날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천은 생각 끝이 아닌 손과 발 지문이 남아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공부하면 할수록, 쓰면 쓸수록,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글 쓰는 길인 것 같다. 그 길에서 지치지 말고 즐기라고 고마운 인연들이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바다에만 있다고 생각한 돌고래들이 육지에서도 긍정을 뿜어 세상을 데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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