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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설계(設計)
 
강영은 시인   기사입력  2024/03/19 [16:41]

 나는 내가 빈집일 때가 좋습니다.

 

 침묵이 괴물처럼 들어앉아 어두운 방을 보여줄 때 고독한 영혼이 시간과 만나 기둥이 되는 집, 증거 없는 희망이 슬픔과 만나 서까래가 되는 집,

 

 우주의 법칙을 속삭이는 별빛과 그 별빛을 이해하는 창가와 그 창가에 찾아든 귀뚜라미처럼 우리는 하나의 우주 속에 들어있는 벌레라고 우는 집,

 

 희고 깨끗한 미농지를 바른 벽이 도면에 있어 닥나무 껍질에 둘러싸인 물질의 영혼처럼 영혼의 물질처럼 나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어 충만한 집,

 

 내가 알고 있는 숲은 결코 그런 집을 지은 적 없어 새장 같은 집을 그릴 때마다 영혼을 설계하는 목수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얼기설기 엮은 노래로 담장 쌓는 집,

 

 수백 년 묵은 팽나무가 지탱하는 그 담장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빈집의 업일지라도

 

 욕망의 가구가 놓여 있지 않은 그런 빈집이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다친 새가 앉았다 가는 내 집이 멋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 강영은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십여 년 남짓 서울과 고향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요양차 내려간 일이, 그대로 눌러앉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의 삶은 고독한 만큼 자유롭고 자유로운 만큼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의 무게가 같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소외와 결핍, 혹은 고독과 같은 감정이 행복과 결이 다른 감정일 뿐,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돌담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속에 멍때리는 일, 늙은 팽나무 꼭대기에서 재재거리는 새 소리와 빈 마당을 채운 들꽃들, 캄캄한 밤, 어둠을 응시하다 보면 지구의 내부와 외부를 가진 것처럼 몸속에 죽음과 삶이 동시에 타오르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노자`가 말한 바,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무위자연"의 삶을 사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산뜻해진다. 

 

 

강영은

 

제주 서귀포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詩論)』 외 2권,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집 『산수국 통신』이 있다. 시예술상 우수작품상,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 작가상, 『문학청춘』 작품상, 서귀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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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19 [16:41]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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