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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서북미 문인협회> 김치를 담그며
 
박희옥 수필가   기사입력  2024/03/20 [16:37]

▲ 박희옥 수필가  © 울산광역매일

 시장에 갔다. 며칠 전부터 벼르던 김치를 담궈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로컬배추는 한 박스에 13불 99전이란다. 많은 사람의 수고를 거쳐서 이곳까지 왔을 텐데 너무 가격이 싸다. 배추를 만져보니 가볍다. 속이 듬성듬성하다. 김치는 배추가 맛있어야 하고 포기김치는 속아 꽉차야된다는 친구의 말에 로컬배추는 포기하고 LA 배추를 샀다. 가격은 로컬배추의 거의 세배 가격이다. 

 

 포기가 크고 실하다. 배추를 십자 모양으로 네 쪽으로 잘라 소금을 뿌려 두었다. 커다란 검은 비닐 백 속에 배추를 담고 가끔 비닐 백을 흔들면 잘 절여진다. 김치는 이렇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성이 필요하다. 우리 조상의 은근과 끈기가 바로 이 김치 담그기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한국의 민속 음식은 생각보다 많고 만들기에 시간도 꽤 오래 걸린다. 그중에서도 김치는 우리와는 뗄 수 없는 음식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 하면 김치부터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에 김치바자회를 갔었는데 그렇게 많은 종류의 김치가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서른 두가지의 김치를 전시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재료가 김치가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배추로도 포기김치, 막김치, 겉절이. 보쌈김치, 백김치, 물김치 등을 만들 수가 있으니 김치가 200종류가 넘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친정어머니는 콩나물김치를 자주 만들어 주셨는데 콩나물을 익혀서 김치양념으로 무치는데 꽁지와 머리를 하나씩 다듬어야 하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미나리를 함께 넣으면 향 또한 좋다. 감김치 또한 일품이다. 감의 단맛과 김치양념이 함께 섞이면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영양으로도 만점이 된다. 김치양념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친구는 김치 속에 레몬을 썰어 넣곤 하는데 국물이 참 시원하다. 요즘은 바나나를 갈아서 찹쌀풀 대신 쓰는데 그 맛도 신기하다. 이렇게 김치는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우리 민족도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잘 적응한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고 각종 재료들과 어울려서 익어가는 과정이 꼭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 같다.

 

 김치병 속에서 익어가는 김치는 보이지 않게 서로에게 적응되어가고 있다. 서로 밀어내면서도 거품을 같이 내고 결국은 같이 익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적당히 세월이 가면서 이해되는 것, 그것이 익어가는 삶이 아닐까 싶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김치가 김치 재료들과 어울려서 익어가는 것처럼 나에게도 김치 재료 같은 친구가 있다. 부족하기만 한 나에게 너무 과분한 친구이다. 내 마음 깊숙이 느껴지는 친구의 사랑은 그동안 살아온 자취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삶을 어떻게 채워 왔는지 가끔씩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평범한 만남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운명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나만을 보아 달라고 요구하기만 하는 미숙한 사랑을 가진 나로서는 서로 어울려 맛을 내는 김치에게서 배워야겠다.

 

 우리가 넣는 여러 재료와 양념에 따라 김치가 달라지듯이 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생각과 인간관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내가 어려울 때 막내 오빠는 늘 내게 “생각이 인생을 좌우한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날카롭게 날을 세우던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며 조금씩 자신을 죽이고 있다. 배추도 자신을 낮추고 죽이는데 나는 생각과 다르게 행동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조금만 뒤로 물러서면 얼마든지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욱 꽉 웅켜쥐었던 순간들.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그러나 이제 옆에서 충고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마음 깊이 고마워하고 있다. 그 친구와 함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느끼고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늘 배우며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고 해도 내일은 그 간격을 좀 더 좁히며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상들이 이 다음에 행복한 미래로 숙성해가는 모습을 가슴에 담아본다. 김치를 절구며 여러 재료들과 함께 익어갈 김치를 기다려 보련다.

 

 와싱턴 주 에버렛에서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2009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2010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등단

2020년 제16회 뿌리문학 신인상 당선

현재 와싱턴 시애틀 라디오한국방송 아나운서

뿌리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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