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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논단> 단독 소유와 공유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24/03/27 [16:40]

▲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 울산광역매일

 아파트 경비실 주변에는 온통 꽃이 만발하다. 출근길에 전해야 할 물건이 있어 지인의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두기로 했다. 마음은 급한데 경비원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은 윙윙거리는 벌떼뿐이다. 

 

 한참 후 나타난 경비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연신 굽실거린다. 꽃을 한가득 담은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어색하게 웃는다. 주변이 온통 꽃인데 굳이 꽃을 꺾어 죽일 필요가 있느냐고, 오래 기다린 나의 화풀이에 경비원은 향기가 좋아서…, 라며 말꼬리가 흐리다. 경비실은 꽃밭 복판에 있어 향기는 베여있고, 온종일 꽃을 감상하는 사람이 경비원이다. 꽃밭의 꽃은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같이 보지만 꺾어 온 꽃은 자신만이 혼자 본다는 생각인 것 같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행복보다 꽃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행복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작년 봄 등산로에 예쁜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이틀 동안 비가 와서 등산을 쉬는 동안에 그새 핀 것이었다. 산에 오르면 수고했다고 화사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꽃이 사랑스러웠다. 나에게만 특별히 웃음을 보내는 줄만 알았다. 일요일 아침 등산길에 만난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몰래 파다가 정원에 심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파가면 어떻게 하나. 저 정도 예쁜 꽃이라면 모두가 탐낼 만도 하지…. 

 

 아마 꽃이 지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 이후로는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꽃이 무사히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이 등산 이유가 되었다. 꽃이 지자 그 자리에 작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예쁜 열매는 빨갛게 익어갔다. 산새들이 찾아와서 열매를 따 먹는 모습도 산길의 정감을 더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 계속될수록 걱정은 점점 더 높이 쌓여만 갔다. 누군가 뽑아 가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감으로 초조했다. 

 

 걱정만 하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몰래 뽑아다 우리 집 정원에 심어야겠다. 성급하게 뽑아 옮겨 심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몰려왔다. 부지깽이를 거꾸로 꼽아 놓아도 산다는 봄에 옮겨야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봄까지 기다려야겠지만, 그 사이에 누군가가 나처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우선 매일 한두 개씩의 예쁜 열매를 따서 버렸다. 웃자란 가지도 조금씩 잘라 버렸다. 본래의 예쁜 모습은 사라졌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장소마저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곳을 수첩에다 메모해두고는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불안함은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적은 평일의 오후 시간에 배낭과 야전삽을 들고 산에 올랐다. 미리 마련된 집 뒤의 그늘진 곳으로 옮겨심기까지 걸린 시간은 수십 분, 이를 위해 수도 없는 밤을 번민으로 보냈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남에게 빼앗긴 것보다는 났다`라는 생각이지만 잘한 선택이라는 것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두었으면 많은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일 년 전이었다. 퇴근길 내내 아파트 경비원과 나의 행동을 비교해 본다. 뒤뜰에 심어놓은 꽃나무는 돌봐주지도 못했지만 잘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산에 있었으면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마음껏 뽐내고 있을 텐데. 보아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 피었다 쓸쓸하게 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왕 뽑아왔으면 잘 챙기기나 하지. 그것도 못 할 바엔 도로 원래의 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순리라고 생각된다. 

 

 일기예보에는 내일은 새벽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꽃나무를 도로 있던 자리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파왔던 자리에 옮기고 나자 마음도 한결 가볍다. 꽃나무는 공유에서 단독소유로, 또 공유로 환원되었다. 

 

 단독소유와 공유, 혼자 보기와 같이 보기, 나의 행동과 아파트 경비원의 행동,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단독소유면 어떻고 공유면 어쩌랴 꽃이 예쁘기만 하면 되지. 모르기는 하지만 공유하는 꽃이 더 오래 피고, 더 많은 사람에게 큰 행복을 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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