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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역사 문화탐방> 청동기시대 논 이야기-무거동 옥현유적
 
이수홍 울산문화재 연구원 연구실장   기사입력  2024/04/17 [16:27]

▲ 무거동 옥현유적 조사 당시 사진  



▲ 이수홍 울산문화재 연구원 연구실장     ©울산광역매일

 1999년 봄은 필자가 진주지역에서 한창 발굴조사에 종사하고 있을 때였다. 그 해 울산 무거동에서는 역사적인 발굴 성과가 있었는데, 지금의 옥현 주공 아파트 일대 개발부지에서 청동기시대 벼를 키우던 논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워낙 학사적으로 유명한 유적이라 당시 필자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달려와 발굴하는 현장을 견학했던 기억이 난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것은 한 시대가 바뀌는 척도가 될 정도로 중요한 행위이고 식량으로써 쌀은 귀한 곡물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은 그들의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의 기간을 오래된 시대부터 구석기시대-죠몽시대(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야요이시대(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고분시대(우리나라의 삼국시대)로 구분하는데, 야요이시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척도가 ‘벼농사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청동기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다면, 후기의 시작은 벼농사의 확산을 조건으로 두는 의견이 많다. 그만큼 선사시대에 쌀이 가지는 파급력이 생활 전반에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벼농사 시작은 언제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우리 조상들이 신석기시대부터 벼농사를 지었다는 증거는 경기도 고양시 가와지유적이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유적의 논 밑바닥이 신석기시대층인데 여기서 벼 낟알이 발견된 것이다. 이후 충청북도 청원군 소로리유적에서도 신석기시대의 벼 낟알이 확인되어 신석기시대부터 벼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벼농사의 시작 시점은 자연과학자와 고고학자의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이다. 자연과학자는 논밑바닥에서 검출된 벼 낟알의 존재를 강조하고, 고고학자는 당시의 시대상황까지 고려해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비로소 쌀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본격적으로 벼농사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인 청동기시대의 어느 시점이라는 견해가 많다. 청동기시대 토기의 바닥에 쌀 모양의 홈이 있는 사례가 있는데, 토기를 흙으로 빚어 말릴 때 그늘에 놓아두는데 이때 벼 낟알 위에 토기를 두어 새겨진 것이다. 즉 이때 쌀이 있었다는 확실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가까운 울산 중구 다운동유적(현재의 다운 동아아파트부지)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서는 거의 한 가마니에 이를 정도의 많은 쌀이 불에 타 남겨져 발견되었다. 주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청동기시대에 울산에 살았던 사람들이 쌀로 밥을 해 먹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하지만 벼농사를 직접 짓는 장소인 청동기시대의 논은 발견되기가 어렵다. 무릇 발굴조사는 옛날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찾는 것인데 선사시대 논이나 밭과 같은 것은 당시의 지형이 조금만 삭평되어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논유적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발굴하는 방법도 무척이나 어렵다. 발굴조사 경험이 많은 베테랑 고고학자도 쉽게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 논이 발견되어도 대부분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당시 논의 전모, 마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적은 그야말로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완전한 형태의 청동기시대 논이 남구 무거동 옥현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현재는 아파트가 들어선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당시에는 북쪽의 완만한 구릉에 청동기시대 집터 79동이 위치하고, 구릉 아래 남쪽 계곡부에 물을 받아 조성한 논이 분포하였다. 북쪽 구릉은 조금 갈라지는 모양인데 그 사이 계곡부로 흐르는 물을 이용해 논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논 위쪽으로 논에 물을 대는 수로도 확인되어 당시 논경작 기술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의 논은 한면의 길이가 2m 내외로 면적이 좁다. 논은 물을 가두어 놓아야 하는데 경사지에 수평으로 논 면을 조성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는 굴삭기도 없을뿐더러 철기가 없을 때라서 오로지 석기로 땅을 개간하다 보니 논 면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옥현유적에서 논이 발굴조사된 이후 야음동유적(실제로는 남구 선암동 도로구간), 굴화리 생기들유적(굴화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부지), 온양 발리유적(농협 창고 부지) 등 울산에서만 10여 곳에서 논 유적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각지에 논유적 조사의 기폭제가 되었다. 무거동 옥현유적에서 집터가 있던 곳은 모두 개발되어 흔적을 알 수 없고 청동기시대 논이 있었던 곳은 지금 학교 운동장 아래에 보존되어 있다. 언젠가 발굴조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을 때 다시 한번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 중요한 무거동 옥현유적을 허물고 택지가 조성되어 반대 급구로 무거동 일대에 조그맣게 옥현유적 전시관이 건축되었다. 그러나 전시 수준이 참혹하여 결국 얼마 못 가 폐관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최근 다시 한 유적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시관이 건립될 기회가 왔다. 중구 다운동 택지개발지구에 개관할 다운동유적 전시관이 그것이다. 그때 옥현유적 전시관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규모와 관계없이 알차고 재밌으며 편의시설도 충분히 갖추어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청동기시대 전시관이 들어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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