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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여여如如
 
구정혜 시인   기사입력  2024/04/23 [17:24]

산길을

한 시간쯤 걷다 보니

나무 의자 하나

 

별생각 없이 그냥 누웠다.

걷는 동안 따라오던 잡다한

생각들 온데간데없다

 

허공과 하나 되어 누운 몸에

하늘과 나무와 숲이

모두 들어온다

 

내가 있는데 내가 없고

만물이 가득한데

만물이 없는 듯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닌

알 수 없는 그 말의 경계를 헤맨다

 

오래전 와불이 누워서 바라본 

하늘이 이러하였을까

생각에 생각을 포개고 있다

 


 

 

▲ 구정혜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위의 시는 시제 자체가 이미 불교적이다. `여여(如如)`는 분별과 차별이 없는 그대로의 마음 상태와 속되지 않은 마음을 의미한다.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 사유를 담은 시이다. 

 화자는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나무 의자에 누웠다가 순간적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불교의 핵심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3연의 "내가 있는데 내가 없고/만물이 가득한데/만물이 없는 듯"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것들은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에 무상(無常)하다. 불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1초 뒤엔 지금의 내가 아니듯, 그리고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닌/알 수 없는 그 말의 경계를 헤맨다"에서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경지를 얘기한다.

 

 

구정혜

 

 

- 1959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 호 지당芝堂. 부천대학 사무자동화과 졸업. 이동도서관, 족보도서관, 뉴 보은㈜ 등에서 근무. 장정규와 결혼, 슬하에 남매(영화, 종필)와 손주(장서윤, 이유빈)를 두었음.

 

- 2014년 월간 《모던포엠》을 통해 등단. 복사골문학회, 부천시인협회, 소새동인으로 활동. 한문 공부도 꾸준히 하여 한국어문학회 한자회 부회장을 역임.

 

- 저서로 시집 『아무 일 없는 날』(2015), 『말하지 않아도』(2019) 시문집 『如如·만추에 핀 꽃』(2021) 등이 있고, 하동군 하남마을 제3회 야단법석선시공모전에서 대상(2019), 복사골문학상(2020) 수상.

 

- 2022년 와병으로 타계. 

 

- 2024년에는 유족의 뜻에 따라 소새동인이 주관하여 유고시집 『하늘이 그러하였을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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