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홍구 시인 수필가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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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 두었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꺼냄이 자랑 같아 어쩐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죄지었던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또한 영광스러웠던 일은 더욱이 아니지만, 이를 통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사고는 순간에 들이닥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그 가능성을 안고 살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랬다. 적어도 약 30년 전에는.
1994년 11월 1일 밤 11시 30분경.
수인 산업도로 목감지하차도가 생기기 전 커브 길에서다.
그 누가 생각이라도 하였겠는가.
순간 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휩쓸리고 말았다.
인천 방향에서 경사로를 돌아내려 오는 승용차와 반월공단에서 퇴근하여 경사로를 앞두고 직선 도로를 올라가는 내 차와 정면충돌을 하고 만 것이다.
커브 길을 돌아내려 오던 차가 내 차를 밀어내어 도로변 가로수에 걸려 찌그러지며 멈추었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구난차가 와서 차를 찢어 나를 꺼내었다고 한다.
결국 내 온몸은 짓이겨지고 많은 출혈 탓에 사망으로 간주하여 반월 고려대학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영안실 담당자가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망진단서를 요구함에 따라 당직 의사의 시체 검안 결과, 아직 심장이 뛰고 있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나 대학병원 체제로는 당장 야간 수술과 치료가 불가능하여 안양 개인병원으로 옮겨졌다.
밤을 새워 머리와 가슴을 처치하고 입술과 턱을 성형 수술하고 우측 다리와 무릎을 처치하고, 좌측 다리엔 18개의 철심을 박아 9개의 링을 채워 동여매는 대수술이 진행된 결과로 간신히 생명은 구했다.
여기서 감출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첫째는 수술 중 의사와 보호자의 다툼이다.
다리 상처가 너무 심하여 이대로 수술한다면 치료 도중 감염을 감당하기 어려워 무릎 위를 절단해야 하므로 지금 절단하자는 의사의 요구에 아내는 썩으면 그때 절단하더라도 지금은 그대로 수술해달라는 말에 의사와의 말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수술은 의사가 하고 치료는 하나님이 해주실 터이니 절단하지 말자 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내가 가해자라며 피해자가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짓궂은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고 7일 되는 날 비로소 의식이 돌아온 날, 나를 병문안 온 여러 사람이 어쩌다 사고가 났느냐는 물음에 경사를 향해 올라가는데 눈앞이 너무 부셔서 운전대를 꼭 잡은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더니 보험회사에 다니는 조카가 삼촌은 피해자예요. 가해자는 따로 있다고 하며 사고 현장 조사를 다시 하여 가해자의 신세를 면했던 일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믿고 수시로 기도하며 감사하고 찬송하며 병원 생활을 하였다.
한 병원에 입원해 2년 반의 침상 생활해야 했고, 반년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다가 3년이 넘어서야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할 때 담당 의사는 앞으로 발로 땅을 밟을 수 없으니,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말해주었지만 휠체어를 거부하고 퇴원하여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길에 목발을 짚고 나와 버스를 타려는데 나의 실수로 헛짚어 목발 하나가 튕겨 나갔는데 순간 지나가던 차가 나의 목발을 부수고 가버렸다.
나는 목발 하나로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남은 목발 하나로 땅을 치며 다짐했다.
‘휠체어도 목발에도 지팡이에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기던지 붙잡든지 걸으리라.’
엎드려 기던 엉덩이로 땅을 쓸던 나의 힘으로 다니리라 다짐하고 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고 붙잡고 걸으며 걸은 결과로 이만큼이라도 내 두 발로 땅을 밟으며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인가 싶다.
하지만, 끝내 한쪽 다리가 5센티미터 짧아져 두툼한 구두 굽으로 평행을 이루며 걷는 형편에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골반에 전해져 오는 통증을 참으려고 십자가를 붙잡고 다니는 지체 장애우의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아픔을 한 편의 『구두 굽』이란 詩에 담아 보았다.
아무도 모르지
다리 하나가 짧아서
구두 굽을 두껍게 고여
투박한 짝 구두를 끌고 다니는 까닭을
아무도 모르지
지그재그로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어긋난 보도블록 틈새에 걸려
넘어질 듯 휘청거려도
얼굴에 늘 미소가 번지는 까닭을
아무도 모르지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쓰러질 듯한 몸의 균형
믿음으로 지탱하며
내디디는 발자국의 무거움을
그분은 아시지
나뭇가지 같은 다리의 걸음걸음
계단 오르내리는 발자국마다
복지국가 장애인 시설을 염원하는
그 기도를.
담당 의사는 생전에 다시는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힘으로 걷겠다고 장담했었다.
넓적다리뼈와 하지 뼈 파손으로 18개의 핀을 박아 9개의 링으로 결박한 환자를 하루에도 몇 차례 여러 명이 찾아와 밤낮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며 나 또한 기도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서원하였다.
‘고쳐주셔서 걷게 되는 날이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다시는 운전하지 않고 내 힘으로 걸어 다니겠습니다. 발에 힘을 주시어 걷게 하여주시옵소서’
서원한 후 가족을 통하여 나의 운전면허증을 반납 조치하도록 한 이후 그날부터 나는 기고, 붙잡으며 내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기를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느 날 담당 의사는 기적이 따로 없다며 이제는 자신이 알아서 재활 치료해도 된다며 치료를 종결하자 하였다.
휠체어에 의존하여 살아야 한다던 환자가 휠체어와 목발을 버리고 기고 긴 것이 이제 지팡이마저 버려야 할 때가 되었으니, 의사도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동안 정말 아프고 힘들었다.
아내나 내가 장담했던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목발 하나를 부숴 버린 것을 본 내가 어찌 남은 하나의 목발을 부실 수 있었으며, 수술은 의사가 하고 치료는 하나님이 할 것이라 했겠는가? 믿는 게 있었기에 장담했던 것이다.
그래서 되어가는 모든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또 하나 의술로는 해낼 수 없는 희한한 사실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다.
크나 작으나 교통사고를 당했던 수많은 사람은 그 후유증으로 날씨에 따라 상처가 쑤시고 절리고, 아파한다지만 나는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날씨로 인한 후유증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치료해 주셨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기엔 아무런 불편이 없는 듯 보아 기분은 좋지만 지금도 나의 구두 굽은 높이가 다르다.
보조기구 없이 자신의 힘으로 바른 자세로 걷는 모든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장애우를 보살핌에 인색하지 말고 건강함에 감사하시며 살아가시라고 말하고 싶다.
△《문예사조》 시, 수필 등단(1991)
△ 수상 : 2008년 한국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2012년 세종문화예술 대상 수상
2024년 한국환경관리사총연합회 환경시 문학대상 수상
△ 시집 : 제3집『나뭇가지 끝에 걸린 하늘』, 제5집『먹구름 속 무지개』,
제6집『그래도 함께 살자고요』제7집『나의 펜은 마른 적이 없었다』
△ 남양주은성교회 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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